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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윤경숙 <3> 예수님을 더 알고 싶던 때 신앙의 멘토 만나

강릉 사는 동안 요리 공부·강의 시작… 정종원 목사님께 준엄한 가르침 받아

[역경의 열매] 윤경숙 <3> 예수님을 더 알고 싶던 때 신앙의 멘토 만나 기사의 사진
윤경숙 이사장(왼쪽 여섯 번째)이 경기도 수원에 동양매직 요리학원을 오픈하고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다.
금요철야예배에서 성령 체험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일시에 해결될 것 같았지만 딸의 기관지는 금방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안 좋아진 것 같았다. 아이 몸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기침이 거칠어졌다. 살도 많이 빠졌다.

그 즈음 교회 성도 중 한 분이 민간요법을 가르쳐줬다. 살구씨, 대추, 호두, 은행을 한줌씩 넣고 물을 두 배 붓고 반으로 졸인 후 먹이라고 했다. 나는 ‘이런 이야기까지 들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아이가 낫는다면 안 할 이유도 없었다.

그랬는데 기적처럼 2∼3일 만에 가래가 없어졌다.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의사도 놀랐다. 성령 체험과 교회 성도의 조언, 그리고 완치. 이 과정이 우연이 아닌 것 같았다. 이게 뭘까 싶었다. 이때부터 예수님을 알고 싶었고 기독교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후 남편과 나는 안양 은혜와진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

남편 직장 때문에 1993년 강릉으로 이사를 갔을 때는 나눔의교회를 섬겼다. 지금은 권사로서 서울 당산동에 있는 영광교회(오경남 목사)를 섬기고 있다. 남편 김정완은 안수집사다.

강릉은 내 삶에서 중요한 곳이다. 신앙적, 사업적으로 큰 전환점을 맞은 곳이었다. 신앙적으로는 멘토를 만났다. 당시 나눔의교회 목사님으로 현재는 은퇴하고 전주로 내려가신 정종원(85) 목사님이 바로 그분이다. 정 목사님은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설립자인 김준곤 목사님과 CCC 및 성시화 운동을 함께하셨다. 우리가 강릉에 도착한 날, 이도자 사모님이 전도지를 들고 오셔서 목사님을 알게 됐다.

현재의 한국조리사관학교를 설립한 후엔 목사님을 교목으로 모셨다. 중요한 일은 목사님과 의논하고 기도를 부탁드렸다. 목사님은 신앙적 관점에서 ‘이것은 맞다’ ‘이것은 틀렸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해주셨다. 내가 “목사님 이렇게 하면 돈을 조금 더 버는데요”라고 아쉬워하면 그분은 “이사장”하며 준엄하게 불렀다. 그러면 나는 “알겠습니다. 목사님”이라고 했다. 목사님은 지난해 “이제는 나 없어도 되겠다”며 이형빈 목사님을 교목으로 임명하고 뒤도 안돌아보고 전주로 내려가셨다.

처음 사업을 시작한 곳도 강릉이다. 나는 1984년 농림부 산하기관에 준공무원으로 취업해 3년 6개월간 근무했다.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여성이어서 진급이 늦었다. 어린 아이를 남에게 맡겨놓고 일했는데, 아이만 불쌍하고 이것은 아닌 것 같았다. 사표를 냈다.

강릉으로 이사 가서는 취미삼아 요리학원을 다녔다. 이때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복어요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이것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싶었을 때, 동양매직이 요리학원 ㈜베스트홈을 자회사로 설립하고 학원장을 모집했다. 합격했다. 열심히 일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나는 일을 하면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다. 그러자 회사가 나를 인정했다. 남편이 서울로 발령이 나서 ㈜베스트홈에 사직서를 내자 서울 구로 애경백화점 내 요리학원장 자리를 내줬다.

그곳에서도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나를 인정하는 것 같으면서도 똑같이 대우했다. 열심히 일하나 안하나 월급이 같았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사직서를 냈다.

그러자 회사는 내게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가맹비는 50만원만 받고 시설 일체도 지원할 테니 프랜차이즈를 하라고 했다. 직접 운영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1999년 수원에 동양매직 요리학원을 차렸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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