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형준] 가짜 보수와 진짜 보수 기사의 사진
새누리당의 분당으로 낡은 보수와 새 보수, 가짜 보수와 진짜 보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이 낡은 보수 가짜 보수이고 무엇이 새 보수 진짜 보수인가?

보수는 특정한 이론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역사의 흐름에서 형성된 가치와 태도의 묶음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진보가 연역적이라면, 보수는 귀납적이다. 그래서 보수주의를 상표 붙인 병에 넣는 것은 공기를 액체로 만들려는 시도와 같다고 한다. 프랑스혁명의 단두대에 놀란 에드먼드 버크가 보수의 정치철학을 정립했듯이, 보수주의는 급진파의 파괴적 행동에 맞서 자생적 질서의 지속적 변화가 바람직하다는 신념들이 묶인 것이다.

한국의 보수도 일목요연한 교리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다. 현대사의 특수한 산물이다. 특히 냉전과 분단 상황에서 ‘반공’은 한국 보수의 핵심적 질료였다. 그리고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는 그 대안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온전하게 실현하지 못했다. 한국 보수의 자부심인 경제발전이 ‘개발독재’를 매개로 이루어지다 보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권위주의와 관주도경제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한국 보수의 비민주 기득권 이미지는 그 시대의 독재와 정경유착에서 비롯된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는 신자유주의가 보수의 기본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YS 시절 금융실명제, 5공 청산, 세계화는 그 표상이었다. 그 진화의 결과 2006년 한나라당의 혁신 강령은 신자유주의에 공화주의를 접목해 온정적 자유주의 노선을 표방했다. 지금 새누리당 강령도 그 연장선상이다. 하지만 문서상의 노선과 실천은 별개였다. 결국 국가주의적 보수로 회귀하여 오늘의 상태에 이른다.

따라서 보수가 거듭 태어나려면 무엇보다 자신이 내세운 가치들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성찰해야 한다. 세 가지만 따지자. 자유주의의 가치를 제대로 지켰는가? 민주주의에 충실했는가? 헌법의 기본 가치인 공화주의를 따랐는가?

보수는 자신들을 자유의 옹호자라 생각한다. 과연 그런가? 정치적 자유주의의 기본은 좌우의 모든 전체주의를 배격한다는 것이다. 파시즘과 공산주의라는 두 전체주의와의 싸움에서 문명을 건져낸 것은 20세기 역사의 자랑이다. 한국의 민주화도 우익 전체주의의 한 변종인 유신독재, 5공 독재와 투쟁해서 이뤄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는 전체주의적 유산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 하나의 올바른 역사만 가르쳐야 한다는 국정 교과서 발상도 그 유산에 속한다. 경제적 자유주의 측면에서도 신뢰와 공정, 투명성 등 시장경제의 도덕률을 지키려는 쪽보다는 ‘자본의 자유 보장’을 자유주의로 환원하는 협소함을 보여 왔다. 그래서 ‘시장의 자유’가 ‘재벌의 자유’로 변질되고, 보수가 ‘재벌 옹호 세력’이라는 오명을 써야 했다.

민주주의자로서 보수의 면모도 취약하다. 민주주의는 주권자의 뜻과 요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이를 대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회가 그 중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는 의회에 대한 행정부 지배를 옹호하는 데 길들여져 왔다. 발전국가의 쌍생아인 관료주도체제의 타성 탓이다. 그래서 여당이 정부의 거수기 노릇을 자임한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국회법 파동도 행정부 권력의 과잉 행사를 막으려던 국회의 시도가 좌절된 것이다. 그 결과 유승민 원내대표가 쫓겨나고 오늘의 불씨를 만들었다. 디지털 혁명이 가져온 직접민주주의를 주목하지 않는 것도 낡은 보수의 무감각이다. 젊은이들이 보수를 외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화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모태이다. 보수가 우리 헌법의 정신을 지키는 세력이라면 이 공화주의를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과 제1조는 공화주의 이념을 정식화하고 있다. 거기에는 권력의 자의적 행사의 금지와 이를 위한 견제와 균형의 원칙, ‘자유의 진정한 보루로서의 법치’의 원칙, 정의 책임 자율 등 시민적 미덕의 원칙,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위한 매진 원칙 등이 자리한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는 이 모든 원칙을 다 깨버린 것, 즉 공화주의를 배신한 것이 본질이다. 탄핵의 진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차제에 한국의 보수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우리는 진정한 공화주의자인가?

가짜 보수를 청산하고자 하는 보수 혁신의 기획은 진정한 자유주의, 진정한 민주주의, 진정한 공화주의를 보수의 가치로 정립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 위에 보수의 금과옥조라 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기득권 보수가 아닌 개혁 보수라는 말이 진실이 될 테니까.

박형준 (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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