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많이 싸우겠지만 판 깨지는 않을 것” “G2 변수에 北核 난제… 한국 자주외교 시험대” 기사의 사진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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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은 근래 어느 해보다 국제 환경이 격동하는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외교 문외한’으로 치부됐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예측 불가능한 행보가 전 세계적인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한반도 주변 주요국들도 격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최적의 대외정책 조합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박근혜정부의 전략적 오판으로 이미 독자적인 외교 공간을 상당 부분 잃은 데다 국내 정치 리더십 공백까지 겹쳐 이중고에 빠졌다. 국내 대표적인 중국·미국 전문가인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 소장(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과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로부터 새해 국제 정세와 한국 외교의 길에 대해 들어봤다.

사회=배병우 편집국 부국장

-올해 세계 정세 전망을 간단히 요약한다면.

이희옥 소장(이하 이 소장)=미 중 러 유럽 일본 등 주요 강대국들이 새 질서를 암중모색하는 단계로 보인다. 미국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미·중 관계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에서 국제정치의 얼개를 새로 맞춰가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기존 판을 재조정하는 과정이 진행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전 세계적인 불확실성을 만든 일차적 주체는 트럼프 당선인이다. 하지만 미·중 관계 차원에만 좁혀 보면 많은 싸움이 있겠지만 양국이 기존의 판을 깨지는 않을 것 같다. 한자로 하면 ‘투이불파(鬪而不破)’라는 말을 쓰는데, 싸우지만 판을 깨지 않는다는 뜻이다. 판의 리셋(전면적 재설정)보다는 큰 틀의 미·중 협력 기조는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양국이 자국 이익을 투사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언론 보도 등에서 그런 갈등 측면이 크게 부각되는 것이다.

김현욱 교수(이하 김 교수)=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 국제질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지난해 본격적으로 표출됐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트럼프 당선이 그렇다. 신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약해지는 현상과 트럼프가 주창한 신고립주의 현상이 결합돼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평화)의 종식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올해를 크게 규정한다면 글로벌 질서의 변혁기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 소장께서 언급했듯 취임을 앞둔 트럼프 당선인이 불확실성의 뿌리다. 대만 총통과의 통화 등으로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고, 친러시아 성향을 드러냈다. 어떻게 봐야 하나.

김 교수=트럼프의 대외정책과 관련해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전통적 공화당 대외정책은 군사력 증강 등으로 힘의 외교를 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도 여기에는 같은 의견이다. 외교안보팀을 군 장성 출신 강경파들로 채웠고 연방정부 적자를 제한하기 위해 도입된 시퀘스터(자동 예산삭감 제도)에서 국방예산을 제외하겠다고 한다. 나아가 국방예산을 대폭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힘을 통한 평화를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미 대외정책에 기업가, 협상가로서의 트럼프의 능력이 미칠 영향이다. 강하게 나갈 때 강하게 나가고,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약점을 잡아 치고 나가 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얻겠다는 것 또한 트럼프 대외정책의 큰 줄기다. 이런 의미에서 대만 총통과의 통화 등은 중국에 강경하게 나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중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려 중국과의 협상이나 거래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려는 포석의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것을 트럼프가 하나의 중국 정책을 깨는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미·러 관계 리셋 얘기가 많은데, 러시아와의 관계는 중·러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려는 목적이 가장 크다. 미·러 관계가 기대하는 것처럼 리셋될 것이냐에는 아직까지는 부정적이다.

이 소장=중국의 핵심 이익이란 게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대만과 티베트다. 대만 문제를 흔드는 건 단번에 전체 판을 흔드는 것이다. 중국 입장에선 이는 협상하거나 양보할 카드가 아니다. 이 때문에 중국은 트럼프가 하나의 중국 카드를 꺼낸 것은 동아시아 전략 운용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조치가 아닌가 일단 판단한다. 하지만 트럼프가 워낙 아웃사이더이고, 워싱턴 정가에 빚 진 게 없다 보니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일회적인 전략적 카드로 쓰고 버리는 게 아닐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트럼프가 유리한 협상을 위해 이를 계속 추진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중국 내에서 커지고 있다.

-당초 외교 문외한으로 여겼던 트럼프에 대한 중국의 평가가 달라진 것인가.

이 소장=트럼프가 의도적으로 불확실성을 높이는 전략을 쓰는 듯하다. 과거에 트럼프는 기업인이 거래나 협상에서 가진 패를 다 보이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이의 연장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의 외교정책이 모두 예측 가능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대외정책에서도 불확실성을 키워 전략적 주도권을 쥐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듯하다. 당초 중국은 트럼프 당선인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보다 대응하기 쉬울 것으로 봤지만 지금은 그를 재평가하는 분위기다. 의도적인 불확실성을 키워 대응 비용을 높이는 까다로운 상대라는 인식이 늘고 있다. 미국이 판을 자꾸 바꾸고 중국이 이에 응수하는 일이 반복되면 중국의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트럼프 집권 초기 미국이 단번에 이 판을 조정하려고 시도할 때 미·중 간에 긴장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

-특히 미·중 관계에 대한 우려가 높다.

김 교수=미국에서 중국 피로감(China Fatigue)이 심각하다. 중국을 손봐야 한다는 여론이 오바마 대통령 정부 때부터 들끓고 있었다. 다만 오바마 대통령은 국내 경제 여건상 대외정책에 제한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소극적 입장이었는데 지금 미국경제는 실업률이 4%대 중반으로 떨어지는 등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수준이다. 이런 경제 상황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힘을 통한 평화를 내세우며 중국을 강하게 압박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이 핵심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문제들, 대만과 티베트, 남중국해까지 건드려 중국공산당의 안정성까지 위협할 경우다. 이런 문제는 중국 입장에서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벌써 대만 문제를 건드렸다. 물론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지는 않더라도 중국으로선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2017년 전반기 미·중 충돌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물론 군사적 충돌을 예방하는 기제가 상대적으로 작동되고 있지만 환율조작국 지정 등으로 양국이 노골적인 갈등을 표출할 수 있다.

이 소장=미·중 관계를 전 세계적 차원과 지역적(동아시아) 차원으로 나눠 논의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수준의 미·중 충돌이 가져올 위협을 중국이 감당하긴 아직 벅차다. 경제 구조가 취약하고 종합적 국력이 지구적 차원에서 미국과 경쟁하기에는 시기상조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만큼은 물러서게 되면 밀린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오는 11월에는 시진핑 국가주석 체제 2기 시작을 알리는 19차 당대회가 열리고 2021년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다. 시 주석의 모든 정책 어젠다가 공산당 창당 100년을 앞두고 어떤 중국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느냐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강한 중국’이 최상위 캐치프레이즈가 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첨예한 이익이 걸린 지역에 미국이 간섭할 경우 양보보다는 강(强) 대 강(强)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다만 글로벌 수준에서 양국 간 충돌은 관리 가능하다.

-한반도 상황은 어떻게 보나.

이 소장=미·중 관계가 갈등 위주 관계가 되든, 협력 위주가 되든 머지않아 방향이 정해질 것이다. 미·중 관계의 얼개가 맞춰지면 그 틀 안에서 대체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러면 우리가 움직일 유동적 공간이 줄어든다. 한반도 문제는 미·중 관계의 종속변수가 될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진다는 뜻이다. 미·중 관계가 좋아지면 우리가 좋아지고, 나빠지면 우리 외교 현실이 나빠지는 게 아니다. 미·중 관계가 좋든 나쁘든 고착되면 한국 외교가 훨씬 어렵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문제가 남북한의 손을 떠나 외부의 뜻대로 결정된다. 국제정치학 용어로는 한반도 문제가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된다는 것이다. 올해 초 우리 외교의 포지셔닝(위치설정)이 매우 중요하다. 미·중 관계의 판이 정립되기 전 유동성이 남아 있을 때 한국외교가 출로를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향후 국제정치에서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라는 것,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김 교수=미·중 간 충돌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북한도 핵보유국 지위를 계속 추구할 것이다. 북한은 북·미 대화를 원하지만 그것이 핵보유국 지위 포기를 전제한다면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북한의 비핵화는 현실성이 없다며 북한 핵무기를 현 수준에서 억제하는 ‘핵 동결’을 협상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북한은 이를 대가로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 낮다고 본다. 결국 북·미 간 대화의 길이 열리기는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미국은 비핵화를 요구하고 이에 북한은 추가 핵실험으로 대응하고 여기다 미·중 간 긴장까지 고조된다면 한반도 안정 해법 마련은 어려워질 것이다. 다른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미·중 충돌 가능성을 낮추고자 북한 문제에서 거래(딜)를 할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한국이 자주적 외교력을 발휘할 공간이 줄어들게 된다. 올해 한국 외교력이 시험대에 설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한·미동맹 등 전후 미국 주도 질서의 주요한 축인 동맹체제에 부정적인가.

김 교수=동맹에 대해 트럼프가 생각하는 건 돈 문제다. 비용만 많이 대라, 공정하게 ‘거래’하자는 것이지 동맹 체제를 약화시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미국의 이익을 더 강조해 동맹의 역할이 오바마 행정부 시절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값싸게’ 개입하고 중국을 압박하려면 일본 한국 호주 등 동맹국의 지원이 더 절실할 것이다. 동맹을 깨기보다 한국의 기여를 더 많이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 소장=중국은 갈수록 미국의 동맹을 불편하게 볼 것이다. 한·미동맹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남북관계가 나빠지고 북·중 관계, 한·중 관계가 동시에 나빠지면 한반도가 미국의 전략적 틀에서 작동한다고 보고 한·미동맹의 문제를 강력히 제기할 소지가 있다. 모든 한반도 문제를 동맹에 환원시켜보기 시작할 것인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논란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트럼프도 이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동맹의 강도를 더 강화시켜야 중국의 부담을 확대시키는 것을 선택할 것으로 본다.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는 등 정치적 리더십이 약화된 상황이다. 외교안보 정책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김 교수=중국도 국내 사정 등으로 양보할 수 없는 상태고 미국 트럼프 당선자도 힘의 외교를 구사하려고 한다. 그 사이에서 한국의 외교적 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사드 배치, 한·미동맹에 대한 중국의 민감도 상승 등이 다 그런 징후다. 국내 정치에 흔들리지 않는, 보수 정권이든 진보 정권이든 공감할 수 있는 ‘여집합 정책’을 만들어 꾸준히 시행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가 협의해 중도적인 정책을 내놓으면 중국이나 미국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국제적인 대북제제 흐름을 따라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우리가 남북관계에서 가질 수 있는 지렛대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을 위한 현실적인 방안을 찾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이 소장=현 외교안보라인은 나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고 상황만 관리하는 모습이다. 비정상적인 상황이고 불확실성을 걷어내야 한다. 안보 리스크가 경제 리스크로 전환되는 구조다. 오랫동안 방치해선 안 된다. 여야가 협의해서 공론의 장에 끌어올리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중국이 연관된 문제에서 해결이 어려워지는 건 제3자가 개입되는 경우다. 동맹, 일본 문제가 그렇고 북핵도 국제적 문제라고 보면 이 범주에 속한다. 그런데 우리 외교라인은 사안별로 접근해 왔는데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패키지 딜(일괄 타결)을 해야 한다. 여러 정책과 사안을 결합해서 가야 한다. 사드 문제의 경우 남북한 간, 한·미 간 주고받을 사안을 한번에 처리하는 일괄 타결이 필요한데 이렇게 하려면 상당한 외교적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외교는 원칙이 없었다. 어디까지 받을 수 있고 어디까지는 레드라인(금지선)인지 주변국에 알리지 않았다. 이렇게 하려면 국내 정치도 중요하다. 여야 간 협치가 필요하고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합의의 폭을 넓혀놔야 한다. 그래야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이 좌로, 우로 요동치지 않는다.

정리=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사진=구성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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