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神의 옷자락을 잡아챌 정치가는 없는가 기사의 사진
근대 유럽 프로이센의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1815∼1898)는 신성로마제국 이래 독일 통일을 이뤄낸 뛰어난 정치가이자 외교전략가였다. 보불전쟁을 은밀히 기획해 완벽하게 전쟁 준비를 해놓고 유럽 최강국 프랑스가 선전포고를 하게끔 한 뒤 굴복시켰다. 이후 독일 제국(제2제국)을 선포하고 수백년 동안 지역주의로 갈라졌던 변방국 독일을 단번에 유럽 중심국에 올려놓았다. 당면한 문제를 오직 철(鐵)과 혈(血)로써만 해결할 수 있다는 유명한 철혈정책으로, 그는 냉혹하고 팽창주의적이며 나쁜 뜻의 마키아벨리스트라고 비판도 받는다. 그러나 통일 이후 유럽 평화의 중재자로서, 강대국 정치지도자로서, 근대 독일의 기반을 다진 보물 같은 정치가였다. 유럽 정세가 어지럽던 시절, 그가 한 말이 있다. “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神)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것이 정치가의 책무다.” 비스마르크 사후 제2제국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통일에 대한 열정, 정치가로서 조국에 대한 책임감, 대내외 정세를 냉정히 꿰뚫고 전망한 균형적 판단은 정치지도자의 자질로 더할 나위 없다.

대한민국 정세가 어지럽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기이한 사건의 발생으로 당분간 혼란은 피할 수 없다. 박근혜정권은 인물이 실패했고, 제도가 실패한 결과다. 인물의 실패 요인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대통령에게 있지만, 속아서 그랬든 알고도 모른 척했든 뽑아준 유권자에게도 있다. 난 안 찍었다고 피할 일이 아니다. 콘크리트 지지율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듯 국민 수준이 해결해야 할 일이다.

제도의 실패는 구조적이다. 87년 체제가 내년이면 꼭 30년이다. 대통령제 교범인 미국의 정당사에서 한 세대인 30년은 유권자와 정당의 관계가 형성됐다 붕괴되는 하나의 사이클이라고 한다. 30년대 뉴딜연합, 60년대 시민권 운동, 90년대 보수 공화당의 상하원 석권이 그렇다. 한국은 87체제로 절차적 민주화는 이뤄냈다. 이번에 대통령과 몇몇 사람들이 맘만 먹으면 민주공화정 체제를 무너뜨리고 사익을 취할 수 있는 제도의 허약함을 똑똑히 목도했다. 30년 적폐를 청소하기 위한 개헌과 개혁 조치들이 필요한 이유다.

개헌만 나오면 탄핵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들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탄핵 집중은 국민적 분노에 올라타 유리한 대선 환경을 지속시키자는 말과 같다. 정파 이익에는 좋겠지만 국가 대개조나 정치리더십 회복과는 별개다. 분노는 분노고, 현실은 현실이다. 분노하되 이제는 책임 있는 정치가들이 냉정함과 합리성, 진단과 처방, 개선안과 실행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나는 조기대선 전 개헌이 가능하다고 보지만, 현실적 이유로 반대하는 대선주자들이 있다. 일리는 있다. 그렇다면 차기 대통령을 3년으로 임기를 단축시켜 개헌을 포함해 국가 대개조를 위한 개혁 조치들을 완수하게끔 하자. 2020년 5월 끝나는 20대 국회의원 임기와 맞추는 한편 선거제도 개선, 검찰 개혁, 행정구역 개편,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 조치 등의 개혁을 마무리하자는 것이다. 차기 대통령은 3년 동안 외치와 개헌 및 개혁 조치에 집중하고, 다른 국내 현안은 여야 추천 총리와 국회가 협치를 통해 관리해나가면 된다. 대선주자들이 공약으로 내걸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재확인하는 등 국민 앞에 서약하면 못할 것도 없다. 나라가 추락하고 있는데 이런 게 정치이고, 정치지도자 아닌가. 확실히 위기지만, 여러 국가적 난제를 해결할 기회를 준 때가 지금이다. 정파적 사심 없이, 임기 단축하면서 오로지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신의 옷자락을 잡아챌 책무를 느끼고 있는 정치가들은 없는가.

김명호 수석논설위원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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