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남도영] 되새길 만한 대선의 기억들 기사의 사진
나라가 어지럽고 1000만 촛불이 타오른 와중에도 대선 레이스는 시작됐다. 다 아는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게 소용 있을까 싶고, 남우세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몇 가지 돌아볼 과거 풍경이 있다.

1997년 이인제 경기지사가 나타났다. 이 깜짝 놀랄 만한 젊은이는 한때 30%의 지지율 돌풍을 일으켰지만, 3등으로 마감됐다. 이후 몇 차례 대선 출마를 시도하거나 실제 출마했다. 97년의 영광은 재현되지 않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가 새겨볼 대목이다. 92년 박찬종 변호사, 2007년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국민의 기대를 받은 잠룡이었다. 다만 현실 정치의 벽이 너무 높았다. 준비 부족이었는지, 현실정치가 너무 혼탁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정주영 정몽준 부자의 돌풍도 바람에 그쳤다. 귀국을 앞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곱씹어봐야 할 반면교사다.

2007년 2월 6일 집권여당 의원 23명이 집단 탈당했다. 의원들은 ‘참회와 새로운 출발’이라는 성명에서 “우리는 열린우리당이 국민의 외면을 받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중도개혁세력과 함께 국민통합신당의 밀알이 되는 것이 참회와 반성의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9년이 흘렀다. 새누리당 의원 29명은 지난 27일 “여당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진짜 보수 세력의 대선 승리를 위해 밑거름이 되겠다”며 ‘개혁보수신당’(가칭) 창당을 선언했다. 열린우리당이 새누리당으로, 밀알이 밑거름으로, 중도개혁세력은 진짜보수세력으로 대체됐다. 9년 전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던 의원들은 통합신당에서 중도통합민주당으로, 다시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이름을 바꾸며 합종연횡했다. 그해 대선은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인 격차로 승리했다. 개혁보수신당이 내년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을지, 담당 기자들에게도 힘든 한 해가 기다리고 있다.

개헌론의 기억도 유쾌하진 않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단축까지 걸며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했으나 무시당했고, 지난 10월 “30년간 시행돼 맞지 않는 옷”이라던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하루짜리 논란에 그쳤다.

2002년 대선 구도는 이회창 대 반(反)이회창 구도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진 사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사실상 ‘장외 대통령’이라는 비판까지 들었다. 이회창 후보는 노무현 후보에 패배했다. 이 후보는 기득권의 상징처럼 비쳤고, 노무현 후보는 정반대 자리에 서 있었다.

문재인 후보는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했다. 안철수 후보의 양보와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에도 108만표 차이로 졌다. 많은 고민을 낳게 하는 숫자였다. 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늘이 짙고, 독자적인 브랜드가 없다는 평가를 들었다. 좋은 사람인데, 강렬한 호소력과 비전이 없다는 냉정한 평가도 있었다. 4년이 지났다. 정치권은 온통 반(反)문재인 연대 얘기만 무성하다. 지금 문 전 대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난 대선의 복기다.

과거의 기억을 들먹였지만, 과거가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이다. 상황이 변했고, 사람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국민이 변했다. 시민들은 더 이상 아파트값을 올려줄 거라는 후보를 찍지 않을 것이고, 모든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후보도 찍지 않을 것이다. 모든 국민을 행복하게 해줄 능력 있는 정치인은 없다. 대신 고통분담을 요구하고, 끝없이 소통하며 해결책을 찾아가는 후보가 선택될 것이다. 촛불 이후의 정치는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사이 어디쯤에서 새롭게 시작될 것이고, 내년 대선은 이를 경험하는 새로운 대선이 될 것이다. 대권을 꿈꾸는 이들이 불안한 과거의 기억을 넘어 새로운 혁신을 선보이길 기대한다.

남도영 정치부장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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