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칙칙했던 주민센터, 센스있는 반란 기사의 사진
서울 구로구 오류2동주민센터는 대나무숲 안쪽으로 구멍 뚫린 블록재로 구성된 50m 길이의 현대적 느낌의 담장을 만들었다. 주민센터 뒤편 폐가와 공터를 활용해 근사한 동네 도서관과 대나무숲으로 둘러싸인 정원을 창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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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동주민센터의 얼굴이 환해지고 있다. 동주민센터는 옛 동사무소 이름을 바꾼 것이지만 건물은 여전히 지루하고 답답한 인상을 떨쳐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근래 ‘이게 동주민센터 맞나?’하며 다시 보게 되는 건물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동주민센터가 건축의 손길을 만나 생생한 표정을 지닌 공공건축물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다.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작품, 한강로동주민센터

서울시 용산구에 있는 한강로동주민센터는 3년 전 신축된 건물로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작품이다. 치퍼필드는 미니멀리즘 건축의 대가로 베를린 신박물관을 지은 세계적인 건축가다. 영국과 독일에서 건축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 작위를 받았고, 영국 여왕이 수여하는 건축상인 로열 골드메달과 유럽연합(EU)이 주는 유럽 최대의 건축상 미스 반데어로에상을 받기도 했다.

치퍼필드가 한국의 동사무소를 설계하게 된 건 아모레퍼시픽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이 용산에 짓고 있는 신사옥의 건축가로 선택한 이가 바로 치퍼필드다. 아모레퍼시픽은 신사옥을 지으면서 한강로동주민센터를 흡수하게 됐고, 근처에 새로 주민센터를 지어주기로 했다. 새 주민센터 설계도 치퍼필드에게 의뢰했다.

한강로동주민센터는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치퍼필드 작품이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에 비한다면 소품 정도라고 해야 되겠지만 거장의 손길을 느낄 수는 있다.

신용산역 근처에 자리한 한강로동주민센터는 주변 고층빌딩 사이에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다. 작지만 단단하다는 느낌을 준다. 5층 건물 중 2층을 동주민센터로 쓰고 나머지 층에는 어린이집, 경로당, 북카페, 강당 등이 들어차 있다. 전체적으로 견고하고 실용적으로 구축됐다. 동주민센터 직원은 “주민들이 벙커처럼 생겼다는 말을 종종 한다”고 전했다.

층마다 커다란 창을 양쪽으로 내 외부 풍경이 시원하게 안으로 들어오는 게 인상적이다. 위아래로도 뚫어놓아 답답한 구석이 없다. 하늘과 콘크리트, 식물이 잘 어우러진 옥상정원은 특히 볼 만하다.

리모델링의 힘, 오류2동주민센터

서울시는 지난해 건축가 180여명과 합심해 13개 구 203개 동주민센터를 리모델링했다. 그 결과 지역적 특성과 공간적 조건을 살린 특색 있는 동주민센터가 곳곳에 생겨났다. 구로구 오류2동주민센터는 그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오류2동주민센터 리모델링을 주도한 이는 건축가 김원진(38)씨다. 김씨는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주민센터를 보며 답답해하다가 뒤편에 있는 폐가와 공터를 발견했다. 김씨는 이 집과 터를 근사한 동네도서관과 대나무숲으로 둘러싸인 정원으로 창조해냈다. 특히 대나무숲 안쪽으로 구멍 뚫린 블록재를 이용해 쌓은 50m 길이의 담장은 매우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서울시 도시공간설계팀의 정아선 주무관은 “설계가 워낙 대담했고, 동장과 집 소유주도 리모델링에 적극 협조했다”면서 “후미진 구석의 버려진 땅을 장기임차해 정원이 있는 도서관으로 꾸며놓으니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동사무소 입구를 틀어 인근 공원과 연결한 노원구 공릉2동주민센터, 카페의 야외 테라스처럼 민원인 공간을 조성한 영등포구 대림2동주민센터, 답답했던 건물 전면에 폴딩 도어를 달아 훤하게 만든 상계5동주민센터 등도 리모델링을 통해 분위기를 일신한 사례다.

정 주무관은 “대림2동의 경우 중국 교포들이 굉장히 많이 사는 동네이고 분위기가 좀 어두운 곳인데 동주민센터가 카페처럼 변신해 동네 자체가 밝아졌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면서 “동주민센터가 바뀌면 동네 분위기도 환해진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올해도 100여개 동주민센터를 리모델링할 예정이다.

다양한 편의시설, 성수1가2동주민센터

성동구는 준공된 지 30년이 지난 성수1가2동주민센터를 새로 지으면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위탁개발을 통한 공공복합청사 건립이다. 주민센터를 복합청사로 신축하고자 할 때 발생하는 재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업비 일부를 외부에서 조달하고 센터 내 시설 임대를 통해 갚아나가는 방식이다. 주민의 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난달 20일 착공식을 가진 성수1가2동주민센터는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로 일반적인 주민센터보다는 큰 편이다. 사업비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로부터 일부 조달키로 했다. 대신 주민센터 안에 편의점, 은행, 커피숍 등 수익시설을 배치할 예정이다. 보건소나 노인복지시설, 어린이집 등이 함께 들어 있는 주민센터는 근래 많이 생기고 있지만 편의점이나 커피숍까지 있는 경우는 처음이다.

성동구 관계자는 5일 “2018년 상반기 완공 예정인 성수1가2동주민센터는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데다 인근에 서울숲과 지하철역이 있어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올해 3월 완공되는 사근동주민센터에는 대중목욕탕이 들어선다. 성동구는 사근동에 목욕탕이 한 곳도 없어 목욕을 하려면 차를 타고 왕십리까지 나가야 한다는 주민들 얘기를 듣고 신축 주민센터 안에 대중목욕탕을 넣기로 했다.

서울 곳곳에서 진행되는 건축 실험으로 동주민센터가 어디까지 진화할지 주목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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