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백화점 돼지고기 선물세트 기사의 사진
‘소리 없이 강하다.’ 1997년 대우자동차가 승용차 레간자를 출시하면서 쓴 광고 카피다. 요란스럽지 않으면서도 효과는 제대로인 경우를 표현한 절묘한 문구다. 20년이 됐지만 이런 의미를 이보다 더 간명하고 적확하게 나타낸 메시지는 본 적이 없다.

김영란법이 딱 이 사례인 것 같다. 최순실 게이트에 파묻혀 조용하되 그러나 파괴력은 가공할 만했다. 내 주변을 보자. 도입 3개월 만에 확 달라졌다. 기자 접대 골프는 완전히 사라졌다. 서울 여의도 회사 근처의 고급 일식집은 ‘준(準)일식집’이란 낯선 네이밍을 담은 광고 전단을 뿌리며 활로를 찾고 있다. 3만3000원짜리 생대구탕이 1만원짜리 얼린 대구탕으로 바뀌었다. 주변 곳곳의 고급 식당에 2만9000원짜리 상차림이 속출했다.

고백컨대 나도 한때 명절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편집국 간부 시절 때가 되면 집으로 선물이 왔다. ‘정(情)’과 ‘관행’으로 넘기기엔 분명 부끄러운 일이다. 김영란법 시행 이전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합리화하기에도 후배들에겐 미안한 자책이다. 장관 등 관료들은 주로 농산물을, 기업에서는 이것저것 다양하게 보냈다. 금액으로 따지면 큰 액수는 아니었지만 수량으로는 하나 둘은 아니었다.

뜬금없이 명절 선물 얘기를 하는 것은 그저께 본 기사 때문이다. 국민일보 경제면 보도에 따르면 내년 1월 말 설을 앞두고 백화점들이 처음으로 돼지고기 선물세트를 내놓는다는 것이다. 지난 26일부터 설 선물세트 예약을 받기 시작한 현대 및 롯데백화점은 ‘쌍다리 돼지 불백세트’ ‘돈육 실속 구이 세트’를 각각 판매한다고 했다. 값은 각각 5만원, 4만9000원이다. 선물 허용 한도를 5만원으로 규정한 김영란법에 맞추기 위해서다. 쇠고기도 1∼1.2㎏으로 용량을 대폭 줄인 수입산 위주라고 한다. 이러다가 명절 선물의 꽃 ‘한우’가 앞으로 선물 리스트에서 사라지는 건 아닐까. ‘소리 없이 강한’ 김영란법의 힘이다.

글=정진영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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