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준동] 관저의 100시간과 세월호 7시간 기사의 사진
바둑 용어에 복기(復棋)라는 게 있다. 입신(入神)의 경지라는 고수들도 판이 끝나면 자신이 뒀던 수(手)를 반상에 다시 올려놓는다. 승부와 관계없이 행하는 루틴이다. 이를 통해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으며 반드시 답을 찾는다고 한다. 실수를 바로 보고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다. 바둑에만 복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사건 때마다 내는 백서 등도 어찌 보면 복기인 셈이다. ‘사고는 왜 발생했나’ ‘대응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잘못된 점은 없나’ 등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 짚어봐야 할 필수 대목 중 하나가 지도자의 역할과 행적이다. 국민 생명이 위협받은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을 참사 이후 2년8개월 동안 집요하게 캐묻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 기무라 히데아키가 쓴 ‘관저의 100시간’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백서나 다름없다. 지진이 발생한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46분부터 정부의 사고대책통합본부가 생긴 직후인 15일 저녁까지 ‘100시간’을 추적했다. 전대미문의 사건이 터진 그때 국가 권력의 중추인 총리 관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당시 사진과 함께 분 단위로 공개된 간 나오토 총리의 행적을 바탕으로 스토리는 전개된다. 후쿠시마의 기록된 시간이다.

도입 부분은 총리부터 시작된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46분. 간 나오토 총리는 참의원 결산위원회에 참석 중이었다. 오후 3시7분 관저로 돌아온 총리가 간부 회의실에 도착했다. 오후 3시14분 긴급재해대책본부가 세워졌고 간 총리가 본부장을 맡았다.’ 구체적인 묘사는 계속된다. ‘3월 12일 오후 5시께 간 총리는 5층 집무실에서 지하 위기관리센터로 내려갔다. 오전 5시44분 간 총리는 관저 옥상 헬리포트로 향했다. 3월 15일 오전 5시35분 총리를 태운 검은 차가 도쿄전력 본사에 도착했다.’ 불편한 진실도 있다. 현지 정보가 부족하자 TV 속보를 통해 사고 상황을 체크하는 총리 관저, 사태가 악화되자 우왕좌왕하는 지휘부의 모습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2001년 9·11테러 당시를 567쪽으로 의회가 기록한 ‘9·11위원회 리포트’의 첫 문단도 대통령으로 시작된다. ‘플로리다주 사라토사에서 부시 대통령은 이른 아침 조깅에 나섰다∼.’ 조사위원회의 비공개 조사를 받았던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테러 발생 몇 달이 안 돼 자신의 행적을 분초 단위로 공개했다. 조사위가 “보고서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리포트에는 테러 당일 오전 6시30분부터 밤 11시8분까지 부시의 일정과 대응조치를 주요 시간대별로 자세히 기술했다. 이뿐 아니다. 테러 직후 공군 1호기에서 부통령과 통화한 내용과 사진, 백악관 지하 비상벙커에서의 전시내각회의 내용과 사진도 공개됐다. 테러 사실을 보고받고도 한 초등학교에 머물렀던 부시 대통령의 ‘7분’은 두고두고 비판을 받았다.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다.

이에 비하면 지난달 ‘오보·괴담 바로잡기, 이것이 팩트입니다’ 코너를 통해 2년7개월 만에 공개된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은 복기치곤 부실하기 짝이 없다. 오죽했으면 헌법재판소가 청와대 어느 곳에 위치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봤는지, 시간별 업무 내용을 밝혀 달라고 요청했겠는가. 박 대통령 측은 보완된 시간대별 행적을 헌재에 조만간 제출하겠다고 했다. 관저의 100시간 서문에는 “논평과 추측은 배제하고 오로지 팩트로만 말하겠다”고 적혀있다. 진정한 팩트란 바로 이런 것이다. 어설픈 팩트는 추측과 의혹만 더 키울 뿐이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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