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히스토리] 미쉐린의 별 셰프들의 꿈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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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저녁은 3월 둘쨋주에나 예약이 가능하십니다.”

29일 오후, 신라호텔 한식당 ‘라연’에 전화를 했다. 예약을 하겠다고 하자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안내했다. 평일 낮에도 1월말이나 예약이 가능하단다.

라연은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시내 중심가에서 떨어져 있어 평일 점심 비즈니스 고객들은 거의 없어 빈자리가 꽤 있었다. 그랬던 라연이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연일 만석이다. 라연 지배인 김학수 차장은 “예전에도 외국인 손님들이 꽤 있었지만 대부분 내국인과 동반이었는데 요즘에는 외국인들끼리 식사하는 테이블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면서 “외국인들이 직접 문의와 예약을 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라연의 이같은 변화는 바로 미쉐린 가이드 효과다. 라연은 지난 11월 7일 발간된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별 3개를 받았다. 라연과 함께 별 3개를 받은 한식당 가온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의와 예약 전화를 받는 직원을 따로 둘 정도다.

서울 미쉐린 스타 식당 24곳 탄생

미쉐린 가이드 서울은 미쉐린 가이드의 27번째 에디션이다. 아시아에선 일본(도쿄, 교토&오사카), 중국(홍콩&마카오, 상하이), 싱가포르에 이어 네번째다. 서울편은 영어와 한국어판으로 출간됐으며, 디지털 버전도 함께 나왔다. 268페이지 소책자는 2만원이지만 온라인에서 무료로 공개되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에는 140여개의 레스토랑과 30여개의 호텔이 소개돼 있다. 이 가운데 별을 받은 레스토랑은 모두 24곳이다. 요리가 훌륭한 식당인 미쉐린 1 스타는 큰기와집 등 19곳, 요리가 훌륭하여 멀리 찾아갈 만한 식당인 ‘미쉐린 2 스타’는 롯데호텔의 프렌치 레스토랑 피에르가니에르 등 3곳이 선정됐다. 요리가 매우 훌륭해 맛을 보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으로 꼽히는 ‘미쉐린 3 스타’는 라연과 가온이 뽑혔다. 36곳의 식당은 빕 구르망(Bib Gourmand) 등급을 받았다. 빕 구르망은 3만5000원 이하의 가격대로 높은 수준의 음식을 제공하는 친근한 분위기의 식당이다.

1900년에 첫선을 보인 여행안내서

서울편이 출간된 지는 두 달이 채 안됐지만 미식가의 ‘바이블’로 꼽히는 미쉐린 가이드의 역사는 꽤 깊다. 116년 전에 태어났다. 프랑스 타이어 브랜드인 미쉐린 그룹에서 1900년 처음 출간했다. 당시 자동차 대수가 3000대에 불과했던 프랑스의 도로 여건은 매우 열악했고, 여행정보 또한 풍족하지 않았다. 엔지니어였던 앙드레와 예술가였던 에두아르 미쉐린 형제는 운전자들에게 타이어를 교체하는 방법, 주유소의 위치, 여행 중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 잠을 청할 수 있는 숙박시설의 정보를 담은 책자를 만들어냈다. 미쉐린 가이드는 미식가들이 아닌 여행가들을 위한 정보지로 태어났던 셈이다.

미쉐린 가이드는 정보가 정확한 여행 안내서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군 작전용 지도로 쓰일 정도로. 1944년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 때 점령군에 의해 파괴된 도로 표지판들을 대신할 지도로 바로 미쉐린 가이드 1939년판을 이용했다. 연합군의 요청을 받은 미쉐린 파리 경영진들은 1939년판 미쉐린 가이드 원고를 전달했고, 미국 워싱턴에서 재인쇄해 활용했다. 미쉐린 가이드가 프랑스의 재탈환에 큰 도움을 준 셈이다.

누가 어떻게 평가하나

미쉐린 가이드에 게재되는 식당들은 세계인이 인정하는 맛집이다. 이 맛집들은 미쉐린의 평가원들이 선정한다. 미쉐린은 이들을 가이드 제작의 대들보로 여기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미쉐린의 평가원들은 11만여명에 달한다. 이들의 신분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공정성을 위해 절대로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다. 일년 내내 샌프란시스코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최고의 레스토랑과 호텔을 다니며 직접 맛보고 자면서 평가하고 있다. 평가원들은 보통 한해 250개의 식당을 방문하면서 음식을 맛본다. 그래선지 평균 몸무게가 80.4㎏이나 된다.

미쉐린 평가원들이 식당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섯 가지다. 첫째 요리재료의 수준, 둘째 요리법과 풍미의 완벽성, 셋째 요리의 창의적인 개성, 넷째 가격에 합당한 가치, 다섯째 전체 메뉴의 통일성과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는 일관성이다. 전세계의 모든 레스토랑을 이 기준에 맞춰 평가한다.

미쉐린 코리아 장정현 과장은 “이러한 평가 방식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미쉐린 스타는 세계적으로 레스토랑의 평가기준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쉐린 가이드는 최고의 셰프들에게 별을 부여하고 있다. 이 별 등급 제도는 1926년에 ‘유명 레스토랑이 있는 호텔’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3 스타 등급이 생긴 것은 1931년부터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100여 명의 셰프들이 별 3개를 받고 있다. 이들 중에는 연거푸 받는 이들도 있고, 새롭게 받는 이들도 있다. 미쉐린 가이드는 해마다 개정판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쉐린은 별뿐만 아니라 만국 공통의 부호인 픽토그램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레스토랑은 장애인편의시설, 야외테라스, 좌식테이블이 있는지, 전망은 훌륭한지, 일요일은 영업하는지,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는 등 14가지의 픽토그램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식 세계화의 첨병 역할 기대

우리에게도 토종 미쉐린 가이드가 있다. 바로 한국 최초의 레스토랑 평가서, 블루리본 가이드이다. 외식업계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직접 뽑는 레스토랑 랭킹 ‘코릿’도 있다. 이번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 선정된 식당들과 이 토종 가이드들의 결과가 사뭇 달라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블루리본에서 최고평점인 리본 셋을 받은 서울 레스토랑 23곳 중 6곳만이 미쉐린에서 별을 받았다. 또 별 셋을 받은 라연은 코릿에서 10위였고, 가온은 순위에도 없었다. 우리 입맛과 저들(미쉐린 가이드 평가원)의 입맛이 다른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일고 있다. 하지만 결과에 물음표를 제기하는 이들은 물론 식음료 관계자들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이 한식의 세계화에 디딤돌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 과장은 “작은 마을의 한 식당이 미쉐린 가이드에 기재되면 해당 셰프와 식당만이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 전체 지역의 특산물, 전통 조리법과 생산자까지 인정을 받는다”면서 서울도 미쉐린 효과를 단단히 누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온을 운영하는 광주요의 조태권 회장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을 한식의 세계화, 산업화를 위한 돌파구라고 했다.

서울을 잘 모르는 지구촌 미식가들이 미쉐린 3스타 셰프의 손맛을 맛보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성질 급한 미식가는 벌써 다녀가 입소문을 내고 있을 것이다.

글=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 일러스트=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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