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기획] “나의 취업·합격을 알리지 말라”… 기뻐 못하는 청년들 기사의 사진
김지원(가명·24·여)씨는 연말 대기업과 중견기업에서 동시에 정규직 직원으로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1년여 취업 준비 끝에 들은 합격 소식이었다. 기쁨에 찬 김씨는 곧바로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나 얘기했다. 친구는 김씨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지만 씁쓸한 표정을 감추진 못했다. 친구는 취업이 되지 않아 인턴을 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취업이 너무 기뻐 서둘러 친구에게 말했는데 얼굴을 보고 ‘아차’ 싶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들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늘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 왔던 A군(18)은 소위 말하는 ‘SKY대학(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수시에서 모두 떨어졌다. 친구들의 합격 소식을 접할 때마다 좌절감을 느낀다. A군은 “친구의 페이스북에서 내가 떨어진 대학에 붙었다는 글을 보고 부모님께 죄송했고 자책감이 들었다”고 했다.

기업 하반기 공채와 대학 수시 결과가 발표되는 연말, 취준생과 수험생들은 ‘웃픈(웃음이 나면서도 슬픈)’ 상황에 처해 있다. 당락만 아니라 주변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도 괴롭다. 합격자들은 축하받는데 눈치가 보이고 불합격한 이들은 하릴없이 자괴감에 빠져든다.

‘나의 합격을 알리지 말라’는 괴현상은 최악의 취업 한파와 맞닿아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 실업률은 8.2%였다. 11월 기록으로는 13년 만에 최고치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에 입사라는 바늘구멍을 뚫어도 마음껏 기뻐하지 못한다. 취업이 안 된 이들이 워낙 많다보니 섣불리 취업 사실을 말할 수 없다. SNS는 물론 친구에게도 알리지 않을 정도다.

고3의 경우 올해 ‘불수능’과 수시 확대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평소보다 성적이 안 나온 학생들이 많아 학생부 위주 수시에 더 힘을 쏟았다. 불합격 소식에 아쉬움이 그만큼 더 크다. 경기도 수원의 한 여고 3학년 교사는 “어려운 수능으로 힘들어했던 아이들이 주변에 수시 합격한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하고 불안해하기도 한다”며 “합격한 아이들도 마음껏 즐거워하지 못한다. 친구들의 추가 합격 여부를 계속 물어보면서도 미안해한다”고 학교 분위기를 전했다.

전문가들은 경쟁 심화가 만들어낸 시대의 단면이라고 진단했다. 주변의 기쁨과 아픔에 공감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청년들에게 없다 보니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에 비해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불안해하거나 활력이 없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며 “생존하기 바쁘다 보니 좋은 소식을 들어도 같이 기뻐해주기보다 먼저 자신의 처지를 빗대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사회적 비교가 심한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지호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나와 타인을 비교하는 경향이 더 심한 편”이라며 “그런 맥락에서 대입이나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이 주변에 미안한 감정을 느끼면서 축하해 달라는 얘기를 하기가 어려워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글=임주언 기자 eon@kmib.co.kr, 삽화=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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