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찬희] 베드로의 닭 기사의 사진
깊은 밤, 모두가 잠들었을 시간에 심문이 시작됐다. 모진 매질도 따라왔다. 이때 마당 한쪽에서 곁불을 쬐던 베드로에게 대제사장 가야바의 하녀가 다가왔다. “당신도 저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나는 그 사람을 모릅니다.” 황급히 자리를 뜨며 잡아뗐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동이 트려는지 하늘 한 귀퉁이가 뿌옇게 변했다. 세 번째 부정(否定)의 순간, 어스름 속에서 닭이 울었다. 베드로도 울었다.

닭은 재미난 동물이다. 주로 아침에 왕성한 활동을 하는데 빛에 민감하다. 피부를 통과해 들어온 빛을 뇌 속에 있는 솔방울샘(송과체)이 직접 느낀다. 희미한 빛에도 생체시계가 작동하는 셈이다. 그래서 꼭두새벽에 운다. 마치 해를 부르는 것처럼. 이런 특성 때문인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닭은 회개, 깨달음, 빛, 희망을 상징한다. 동시에 파수꾼으로도 여겨진다.

아침을 깨우는 닭의 해, 정유년이지만 우리 경제의 앞길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못하다. 경제의 파수꾼들은 마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앞둔 장수 같다.

“대한민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시장을 어떻게 안정시킬 것인가. 금융의 혈맥으로서 역할도 시급한 문제입니다. 위험관리와의 전쟁, 그렇게 정유년을 맞겠습니다.” 기자단과 점심을 나누던 지난 27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거듭 ‘위험’을 얘기했다. 현재 상황을 살얼음판에 비유하며 1000만 대군 같은 위협이 몰려올 것이라고도 했다. 임 위원장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나오는 한 대목을 인용했다. ‘한 사람이 좁은 길을 지키면 능히 천 명을 두렵게 할 수 있다.’

이튿날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참석한 송년회 자리에서도 충무공이 등장했다. 진 원장은 최근 수첩에 적어두고 자주 펼쳐본다는 충무공의 한시 ‘한산도야음(閑山島夜吟)’을 읽어 내렸다. 그는 우리 경제의 앞날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시 구절처럼 밤잠을 못 이루며 고민해야 할 만큼.

두 사람은 ‘위험’으로 가계부채를 콕 집어서 말했다. 흔히 말하듯 ‘경제는 심리’라며 구체적 언급을 피할 법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는 이미 국가경제를 위협하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다. 정책금리 인상이라는 미국의 날갯짓이 우리에겐 ‘시장금리 상승→원리금 상환 부담 가중→한계가구 파산’이라는 태풍이 돼 들이닥칠 수 있다.

엄청난 규모의 가계부채는 오롯이 빚을 진 사람만의 잘못은 아니다. 가계부채가 덩치를 키운 데 있어 정부 책임이 7할은 된다고 할 수 있다. 손쉽게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부동산·건설 정책에 눈이 멀어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외면했다. 대표적인 게 2014년 박근혜정부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정책이다. 쉽게 말해 대출받기 좋게 만들어줄 테니 빚내서 집을 사라고 강권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 가계를 희생시킨 것이다. 충격은 주로 평범한 사람, 초동급부(樵童汲婦)에게 몰린다. 열심히 땀 흘리며 살아도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빚에 오늘을 허덕여야 한다. 앞으로 져야 할 빚에 미래를 저당 잡힌다. 그래서 다들 미래가 없다고 한숨을 내쉰다.

올해 정부 경제팀 앞에 놓인 숙제는 많고 복잡하다. 그래도 평범한 이들에게 희망과 빛을 가져다주는 게 정부 경제팀의 책무다. 이번에는 제발 코앞의 돌부리만 보지 말고 먼 곳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봐 달라. 베드로에게 새 길을 열어준 것처럼, 위험을 알리고 어둠을 내쫓으며 희망을 불러오는 닭이 돼 달라.

김찬희 경제부 차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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