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박근혜 대통령의 말 기사의 사진
이번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문제였다. 지난 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돌발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자신에게 쏠린 여러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그러나 다수 언론으로부터 자기변명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적 평가를 받았다. 본인이 이미 일부 인정했고, 남들은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안마저 전면 부정해 새해 첫날부터 국민의 분노만 들끓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직무 정지된 대통령이 비서실을 통해 이런 모임을 갖는 것 자체가 법을 위반한 것이란 지적도 있었다. 대통령으로서야 논박이 펼쳐지는 특검과 헌법재판소 대신 일방적 설명이 가능한 이런 자리를 빌려 우호적 여론을 조성키 위한 의도였겠으나 화(禍)만 키운 것 같다.

대통령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바 아니다. 검찰과 특검 수사로 뇌물 관련 혐의가 점점 짙어지는 데다 헌재 기류를 보면 ‘탄핵 인용’이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박한철 헌재 소장 신년사 곳곳에서 이런 맥락이 확인된다. 그는 999자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신년사에서 ‘무거운 책임감’ ‘국민 여러분의 믿음에 부응해’ ‘헌재가 맡은 역할을 책임 있게 수행’ 등의 표현을 쓰며 탄핵심판 소회를 털어놨다. 나는 이 문구들이 ‘국민의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를 헌재가 책임 있게 수행하겠다’는 문장으로 치환되며, 사실상 ‘탄핵 인용’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가 부응하겠다는 국민 믿음은 여론의 다른 말이다. 각 언론사가 실시한 신년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헌재가 박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거나 ‘탄핵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답변은 경향신문 77.1%, 동아일보 78.1%, 서울신문 62%, 세계일보 77.3%, 조선일보 82%, 한겨레신문 80.2%로 나타났고 문화일보 조사에서는 67.2%가 탄핵 결정 이전에 자진사퇴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신년사가 소장의 사견이 아니라 조직의 정서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결론은 뻔하다. 산궁수진(山窮水盡), 그야말로 ‘산도 물도 다 막힌’ 갑갑한 형국에 박 대통령이 맞닥뜨리는 셈이다.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은 2일 시무식에서 “가는 화살도 여러 개가 모이면 부러뜨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비서실 직원들이 단합해 대통령 관련 의혹 해소에 힘을 모으자는 뜻으로 읽힌다. 워낙 절박한 탓인지 박 대통령의 기자간담회를 또 추진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위법 논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기자간담회를 다시 검토한다면 이번처럼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공식적으로 예고하지 않고, 출입기자 전원에게 연락한 것이 아니며, 기자의 손발인 노트북 컴퓨터 지참과 사진 촬영도 불허한 비대칭 만남에서는 화자(話者)의 진심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먼저 진솔한 입장을 밝힌 다음 기자들과의 사전각본 없는 문답이 생중계되는 그런 형식이어야 한다. 그게 불편하다면 만나서는 안 된다.

이번 기자간담회 직후 SNS에는 박근혜 대통령 번역기가 오랜만에 다시 등장했다. 대통령의 말 중에 앞뒤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비문이 너무 많다는 방증이다. “그건…그래서…그래갖고…그래서…또…”란 제목으로 비꼰 기사도 있다. 대통령이 반드시 말을 잘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말은 생각의 표출이고, 사고는 결국 정책으로 구체화된다는 점에서 대통령이 말에 능해야 함은 불문가지다. 최순실 게이트도 결국은 연설문 유출에서 발화됐다. 말이 사달을 일으킨 것이다. 박 대통령이 대놓고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기에 앞서 진정성 있는 내용의 말을 제대로 표현하는 말본새 공부를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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