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한장희] 경제계에 새해는 언제 오나 기사의 사진
삼성 등 주요 대기업은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황별 대응책을 준비한다. 이른바 ‘시나리오 경영’이다. 맞춤형 대응책이 있지만, 대외적으론 “불확실성 때문에 사업계획 짜기가 힘들다”며 엄살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최근엔 엄살만은 아닌 듯하다. 한 대기업 임원은 “시계(視界) 제로가 아니라 아예 시계(時計)가 멈춰 있다”고 말했다. 실제 특검 조사 대상에 오른 상당수 대기업들이 지난 연말 인사를 못했다.

연말 사장단·임원 인사는 1년 단위 기업경영의 첫 단추다. 하지만 무기한 연기되면서 조직 개편이나 새해 경영계획까지 연쇄 차질을 빚고 있다. 멈춰선 시계가 언제부터 돌아갈지도 모르겠다는 분위기다.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벚꽃 대선’ ‘찜통 대선’처럼 기업 내부에선 ‘2월 인사’ ‘3월 인사’ 등 근거 없는 관측만 떠돌 뿐이다. 대개 한 달 정도 이어지던 인사철 뒤숭숭한 분위기가 기약 없이 지속되자, “지금은 적당히 놀고 있다”고 털어놓는 이들도 있다. 그래도 조사가 일단락된 후에 시작하는 게 낫다고 말한다. “현 상태로 사업계획을 짜봐야 불완전할 수밖에 없고, 실행력도 담보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정부 부처는 더 심각해 보인다. 새해 업무보고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야 할 공무원 조직엔 예년의 긴장감을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주 내놓은 2017년 경제정책 방향도 발표되자마자 ‘재활용 대책’ ‘6개월짜리 시한부 정책’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현재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가져가며 최대한 안정적으로 운용해 나가겠다는 의미로 이해해 달라고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고백으로 들리는 게 사실이다.

공직사회의 일손 놓기 현상이 두 달 이상 지속되면서 국민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가 대표적이다. 초동대처 실패로 닭·오리 등 가금류가 3000만 마리나 살처분됐고, 치솟는 계란 값을 잡기 위해 신선란을 수입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똑같은 H5N6형 AI가 발생한 일본은 피해 규모가 우리의 20분의 1 수준이라니 공조직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한다.

오는 20일 미국에선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다. 세계 각국은 대전환을 준비하고 있지만 한국 경제는 선장 부재 상황 속에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상당수 주력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공급 과잉에 치이고 중국 기업들에 밀려 경쟁력을 급속히 상실하고 있다. 미국발 금리 인상 압박에 13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부채에 짓눌려 있는 가계의 고통도 가중되고 있다. 생존을 위해 어느 때보다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기업 및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할 시점이지만, 현실은 힘 빠진 장수 밑에 영혼 없는 공무원들뿐이다. 문제는 새 정부가 들어서 인사를 마무리하기 전까지 공공 부문 전반에 걸친 업무공백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점이다.

올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를 뽑는 일이다. 거짓말 안 하는 대통령, 법을 잘 지키는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새 리더십은 당장 세워지지 않는다. 그 사이 나라 경제는 표류하다 못해 파탄날 수 있다.

관건은 새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전까지의 상황관리다. 서민들이 입을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언제 낭떠러지로 떨어질지 모를 불안한 하루하루가 이어진다면, 또다시 국민들은 차선이라는 생각에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관료, 특히 경제부처 공무원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새해가 밝았는지도 모를 만큼 짙게 깔려 있는 안개를 걷어내야 한다. 한장희 경제부장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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