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박카스 회장 기사의 사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디오니소스는 포도주의 신이자 다산과 풍요의 신이다. 로마 신화에는 바쿠스(Bacchus)란 이름으로 나온다. 바쿠스의 영어식 표현이 바커스다.

박카스는 서울대 의대 졸업 후 독일 유학을 갔다 온 강신호 동아제약(현 동아쏘시오그룹) 회장이 함부르크 시청의 지하홀 입구에 서 있는 석고상 ‘바커스’를 떠올리고 붙인 이름이다.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먹고사는 게 힘들었던 시절 구호단체들을 통해 비타민이 보급됐다. 강 회장은 1961년 박카스를 출시하며 피로회복과 음주로 인한 간 손상을 보호해주는 의약품임을 내세워 경쟁사 제품과 차별화했다.

박카스가 처음 나왔을 때는 알약인 ‘정’ 형태였다. 그러나 정의 외피를 형성하는 당의정이 녹으면서 대량 반품사태가 빚어졌다. 강 회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앰풀 형태로 만들어 출시했다. 이번엔 소비자들이 앰풀 박카스를 주사제로 착각해 제 손에 주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금의 드링크 형태로 바뀐 건 1963년 8월이다. 박카스는 2015년 단일제품으로는 처음으로 매출 2000억원을 돌파했다.

꽉 들어찬 엘리베이터, 빗속을 뚫고 택배 일을 하는 초라한 아버지를 외면하는 딸, 그런 딸의 책상에 아버지가 두고 간 박카스가 놓여 있다. 군대에 가려고 시력검사표의 숫자를 외우며 ‘꼭 가고 싶습니다’를 외치던 청년이 등장하는 CF.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푼다’ ‘오늘보다 소중한 내일이 있기에’라는 광고 카피는 반세기 넘는 동안 국민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줬다.

최근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강 회장이 모교인 서울대 의대에 10억원을 기부했다고 한다. 경제난과 최순실 사태로 지친 국민들에게 청량제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비선실세에게 선뜻 거액을 건넨 재벌들과 비교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개인을 살릴 수 있는 의사보다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신념 때문에 제약인의 길을 택했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글=이명희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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