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히스토리] 목조·합판 조립 모델하우스, 복합문화공간 탈바꿈 기사의 사진
최초의 견본주택인 한강맨션 아파트 견본주택(맨 위)과 1971년 개관한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 견본주택(가운데 왼쪽). 견본주택 초기에는 단지 내부를 구현하는 데 그쳤지만 최근에는 로봇이 고객을 안내하는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아티움시티’ 견본주택(가운데 오른쪽)이나 VR(가상현실)을 이용하는 방식(맨 아래)으로 점차 진화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서울역사박물관·각 건설사 제공
‘한국 최초 맨션! 현대적인 문화생활의 보금자리…’

1969년 10월 착공한 한강맨션 아파트의 광고 문구다. 1968년 장동운 대한주택공사(주공) 4대 총재가 일본 출장 당시 고급 아파트 광고를 보고 고안한 이 아파트는 주거 공간의 다양화를 이끄는 단초가 됐다. 그러나 서민 주택을 건립해야 할 주공이 중산층 아파트를 짓는다는 반발도 컸다. 고민하던 주공은 논란을 불식하고,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묘책을 내놓는다. 바로 견본주택 도입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첫 견본주택이다.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견본주택은 단순히 아파트 내부를 실사와 비슷하게 재현해 놓은 공간을 넘어 주거 문화와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진화해 왔다. 모델하우스를 지나 주택전시관, 주택문화관, 갤러리 등을 거치며 예술 중심의 복합문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집에 대한 ‘욕망’, 완벽한 집을 향한 ‘갈망’과 좋은 집을 고른다는 ‘우월감’을 담고 있지만 ‘복제’와 ‘허상’일 뿐이라는 비판도 많은 견본주택은 어디서 기원했고 향후 어떻게 발전해 나갈까.

견본주택의 변천사

한국에 견본주택 개념이 싹트게 된 계기는 1915년 9월 11일 대한매일신보 주최로 경성에서 열린 ‘가정 박람회’다. 박람회에 마련된 4개의 전시관은 일본 가정을 모델로 아동실, 주부실, 노인실로 구성됐다. 향후 조선 중류 가정의 주거 형태와 가정 문화에 대한 이상향을 제시하면서 견본주택의 탄생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강맨션 아파트 견본주택의 경우 지상 1층 연면적 140㎡ 규모로 지어졌다. 목조, 합판으로 구성된 견본주택 건립에는 총 200만원이 들었다. 이용객이 입구로 들어서면 단위세대를 볼 사람은 오른쪽으로, 안내실에서 기본적 개요와 설명을 들을 사람은 왼쪽으로 이동하는 간단한 구조였다. 견본주택 기공식에는 당시 국무총리까지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이후 남산외인 아파트(1969년), 한간민영 아파트(1971년), 여의도시범 아파트(1971년) 등에도 견본주택이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부자만 사는 줄 알았던 아파트가 보편화된 덕이 크다. 당시 정권이 주택건설 10개년 계획 등을 세우며 아파트 보급에 나섰고, 지식인 계층으로 대변되는 ‘돈 많은’ 중산층이 점차 늘어났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대한 인기가 치솟으면서 자연히 견본주택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몰리게 됐다.

80∼90년대 들어서는 견본주택의 규모도 점차 커지기 시작한다. 1995년 수원 영통지구 견본주택은 대형건물 1동에 3개의 단위세대를 포함해 면적이 874.5㎡에 달했다. 단순히 실제 지어지는 건물을 보여주는 것에 그쳤던 견본주택 개념도 이때부터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강남구 청담동에 들어선 주택공사의 상설주택전시관은 자재전시장과 영화관, 강당까지 갖춘 채 손님을 맞았다.

90년대 이후에는 주택(주거) 문화관이란 이름이 보편화된다. 견본주택을 통해 건설사가 직접 소비자에게 기술적 우위성과 품질, 시공의 우수성을 인식시키는 ‘마케팅’ 차원의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정부의 분양가 상한제 폐지 등의 영향으로 견본주택이 분양 성패여부를 결정하는 변수가 되자 건설사들이 견본주택 자체에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해서다.

2000년대부터는 GS건설 ‘자이갤러리’나 삼성물산 ‘래미안갤러리’, 대우건설 ‘푸르지오밸리’ 등 복합 문화공간이 대세다. 짓고 다시 부수는 공간이 아닌, 상설 전시관이다. 또한 단순히 집만 보는 구조를 탈피해 생활 방식 자체를 바꾸려는 까다로운 수요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장치들이 가득하다. 북까페와 키드존, 커피전문점 등이 좋은 예다.

최근에는 발달한 IT 기술과 접목한 최첨단 견본주택이 등장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도시공사(SH)의 아파트 분양 시 컴퓨터로 사이버 견본주택을 방문하면 VR(가상현실)을 활용한 매물을 살펴볼 수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달 분양한 ‘힐스테이트 아티움시티’ 견본주택에 건설업계 최초로 단지 내 시설 위치를 알려주는 로봇도우미를 도입했다. 고객이 말하는 내용을 인식한 뒤 버튼을 누르면 안내하는 방식으로 작동해 눈길을 끌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규모의 대형화와 프로그램의 다양화를 꾀하던 견본주택이 보다 슬림해지고, IT를 이용한 최첨단 기술의 장으로 바뀌고 있다”며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 전시관으로 기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견본주택의 경제학

견본주택의 생명은 얼마나 될까. 분양상황에 따라 짧게는 1년, 길게는 수년에 이른다. 견본주택을 짓는데 필요한 대지는 대략 1650㎡∼1980㎡(500∼600평) 정도다. 주차공간까지 더하면 3300㎡(1000평) 정도는 확보해야 걱정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건설비용은 부지임대료와 인테리어 비용 등을 합쳐 계산한다. 수도권의 경우 40억∼50억원이 소요되며, 지방 대도시의 경우 30억원선이다.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의 경우 견본주택 건설에만 100억원 넘게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견본주택 부지 선정에서 완공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6개월이다. 부지를 구하기 위한 업체간 경쟁도 치열하다고 한다. 공사기간은 보통 2∼3개월이 들고, 시공은 전문 업체가 맡는다.

견본주택 내 고가의 소품들은 대부분 임대하고, 커튼 등은 건설사가 직접 제작하거나 구입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다 지어놓고 컨셉에 맞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디자인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부동산 열기가 꺼지지 않으면서 방문 인원은 날로 늘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견본주택 오픈 이후 주말에는 하루 1만명씩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진화하며 고객에게 더 친절한 견본주택이 등장하고 있지만 조심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실제 평수보다 더 넓어 보이도록 견본주택 내 착시현상을 유도하는 방식 등도 가끔 이용되기 때문이다. 줄자를 휴대해 침대 등의 길이를 직접 재어보는 식의 전략이 필요하다. 만약 견본주택 내에 빈약한 홍보자료밖에 비치되지 않았다면 추가 자료를 요청하고, 기념품을 미끼로 한 개인정보 수집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건설사와 계약한 분양대행사를 통해 정보가 악의적으로 유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견본주택과 다른 마감재를 사용했다는 식의 불만을 피하기 위해 내부 촬영이 금지돼 있는데 이는 철저히 건설사를 위한 조치”라며 “견본주택은 똑똑한 고객에게만 친절한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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