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돈과 권력의 부역자들 기사의 사진
최순실 사태가 일깨워준 불편한 진실은 우리가 소중하다고 여겨왔던 가치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정직이나 진실, 양심이나 정의 같은 것들을 이제는 도덕책에서나 찾아야 할 것 같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그런 가치들을 하찮은 것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 소위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리 아이들의 꿈이자 고시원에서 밤을 지새우는 흙수저들의 희망이었다. 이번에 드러난 그들의 민낯은 추악하고 민망하다. 증거를 들이밀어도 딱 잡아뗀다. 거짓말 릴레이에는 대통령이나 장관, 청와대 수석이나 비서관 등 직업이나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최고의 지성이라는 상아탑도 예외는 아니다. 정의를 가르쳐야 할 교수들이 룰을 깨고 반칙을 했다. 이들이 법과 국민을 우롱하며 청문회와 재판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모습은 참담할 정도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 전체가 썩어빠졌다는 거다.

민초들에게 세금 인상은 거위의 털을 뽑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니라고 호기를 부리더니 실상은 소신도, 영혼도 없는 권력의 부역자들이었다. 나라 녹을 먹기로 했을 때는 국민과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는 포부가 있었을 텐데 어쩌면 이리 앵무새일까. “단 하나도 스스로 판단하고 이행한 적이 없고 모두 대통령이 결정하고 지시했다.”(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 “대통령의 지시라 거부할 수 없었다.”(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청와대 근무자들은 다 아시겠지만 대통령이 말씀하실 때 그렇게 토를 달기가 쉽지 않았다.”(조원동 전 청와대 수석)

“나는 누구보다 내 임무에 충실했다. 당시 나에겐 총통의 지시가 법이고 진리였다. 그러므로 나는 죄가 없다.” 2차대전 때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한 혐의로 재판정에 선 루돌프 아이히만의 항변과 무엇이 다른가. 조정의 신하들이나 초야의 선비들은 임금의 거악을 막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상소를 올렸다. 백이숙제처럼 주려 죽을지언정 소신을 지키고 할 말은 했다.

바른 소리 하기가 그렇게 어려울까. 미르재단의 대기업 불법모금을 1년여 전 처음 폭로했던 박병원 경총 회장의 답은 이렇다. 과거나 지금이나 힘들다. 이전 정부들이 대기업들에 같은 일을 하고도 뒤탈이 없었던 것은 기업들이 이사회 결정을 거쳐 돈을 출연하게 하고 스스로 운영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포스코 사외이사를 맡고 있던 그는 미르재단에 30억원을 출연하기로 했다는 얘기에 이사회 지분이라도 요구하라고 했단다. 그랬더니 “다른 대기업들이 내는 출연금에 비하면 너무 적은 액수라 그런 요구를 하기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부족하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도 아니고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 30년이다. 결국 돈과 권력 때문이다. 물질 만능주의와 성공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목적을 위해서라면 반칙이나 일탈은 괜찮다는 정서가 용인되고 사회 곳곳에 퍼진 결과다. 도덕이 무력해지고 거짓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살라고 가르쳐야 하나.

케인스 연구가인 로버트 스키델스키와 에드워드 스키델스키 부자는 공저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에서 인류가 이뤄낸 눈부신 경제성장이 돈에 대한 사랑이라는 악마와의 타협으로 이루어진 성과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돈 자체가 본질적인 목적이 아니라 삶의 좋은 것을 누리기 위한 수단인데 ‘좋은 결과’를 위해 ‘악한 동기’를 허용하면서 좋은 삶의 이념이 쇠퇴했다고 주장한다. 정권이 바뀐다고 새 대통령을 뽑는다고 이 적폐가 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더 우울하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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