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아멘, 수술 시작합니다”… 기도의 능력을 구하다

연세대 의료원 원목실 ‘기도로 함께하는 의사 프로젝트’ - 세브란스병원 수술실

[르포] “아멘, 수술 시작합니다”… 기도의 능력을 구하다 기사의 사진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이 수술하기 전 환자를 위해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의료원 원목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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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에서 깨어났을 때 극심한 통증이 느껴져 무서웠어요. 이때 회복실 천장에 쓰여 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사 41:10)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어요. 저절로 눈물이 나고 안도감과 평안함을 느꼈어요.”(고산옥)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불안했는데 마취하기 전 의사 선생님이 기도해주시니 짓눌렸던 마음의 부담과 불안이 사라졌어요. 나를 수술해줄 분이 기도를 해주니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어요.”(이형철)

최근 몇 년 동안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 받은 이들의 목소리다. 이들은 수술실 침상에서 바라본 성경말씀이 큰 힘이 됐으며, 수술 전 의료진의 기도가 불안과 고통을 덜어줬다고 고백했다.

연세대학교 의료원 원목실은 2013년 7월부터 세브란스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 등 산하 모든 병원 수술실에서 환자와 의료진이 수술 전 함께 기도하는 ‘기도로 함께하는 의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 내용은 수술 대기실에서는 원목실 교역자가 환자와 수술할 의료진을 위해서 기도하고 환자가 요청하면 마취 전과 수술 전에 의료진이 직접 기도한다는 것이다.

지난 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세브란스병원 5층 수술 대기실. 수술 전 환자들이 잠시 머물며 기본적인 병력체크 등이 이뤄지는 곳이다. 원목실 곽수산나(57) 전도사가 의료진의 기도 여부를 체크해 ‘환자이동정보’ 팻말에 기도요청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그는 “사람마다 불안에 대한 체감이 달라서 현재의 마음 상태를 물어보고 그 마음에 따라 기도해 드리고 있어요. 하루에 60∼70명의 환자를 만나는데 교역자와 집도할 의료진의 기도를 거절하시는 분은 없어요”라고 말했다.

이때 신장이식 수술을 앞둔 40대 여성 환자가 수술 대기실로 들어왔다. 이어 그녀에게 신장을 기증하는 남편의 침상이 나란히 놓여졌다. 곽 전도사가 부부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주님, 환자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의료진의 손을 잡아주셔서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치고 회복되도록 지켜주시길 기도합니다. 이제 부부가 아픈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귀한 가정을 꾸려가게 해주세요.” 부부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렸다. 곽 전도사는 부부에게 “저희 병원은 기독교 의료기관으로 의료진이 수술 전 기도해 드리고 있어요. 괜찮습니까”라고 물었다. 부부는 기도를 원한다고 말했다.

연세대학교 의료원은 ‘기도하는 의사’를 위해 ‘마취 전 기도문’과 ‘수술 전 기도문’을 산하 병원 수술실에 비치해 두고 있다. 기도문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구분 없이 모든 의사가 참여할 수 있도록 원목실에서 의료진의 의견을 6개월 동안 수렴해 만든 것이다.

수술실에서 기도하는 의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취과 의사 권태동 교수가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마취를 담당한 의사입니다. 마취하기 전에 제가 간단히 기도하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라며 환자에게 동의를 구했다. 환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료진 5∼6명이 환자 주위에 모였다. 권 교수가 낮은 목소리로 기도했다.

“하나님, ○○○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이제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해 주시고, 수술 잘 받을 수 있도록 돌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의료진의 손길 위에도 함께해 주시고,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취가 끝난 환자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에서 환자는 의식이 없지만 담당의사는 ‘수술 전 기도’를 한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료진의 다짐이기도 하다. “하나님, 이제 수술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희들과 함께해 주시고, 수술 잘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현장에서 수술을 막 끝내고 나온 간담췌외과 전문의 이우정(60) 교수를 만났다. 그는 ‘기도로 함께하는 의사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신앙이 성장했다고 고백했다. “4대째 목회자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했었어요. 그러나 위급한 순간마다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했고 그때마다 고비를 넘기는 은혜를 체험했지요. 이를 통해 ‘기도하는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는 평소 마음속으로만 기도했는데 병원에서 의사들의 수술 전 기도를 정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수술실에서 환자를 위해 기도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그는 ‘기도로 함께하는 의사 프로젝트’로 의료진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지고 수술합병증은 줄었다고 말했다. “수술할 때 의사가 의료 스태프에게 화를 내면 수술 합병증이 생길 확률이 높지만 수술 전 기도로 마음을 집중하면 관용의 마음이 생겨 야단치고 싶은 마음도 없어져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환자를 위해서 용서하고 관용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생활도 경건해지려고 노력하고, 수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됐지요.”

긴박한 수술 현장에서 환자를 위해 기도하는 의료진의 모습을 보면서 의료 스태프들은 스스로 겸허해진다고 전했다. 김양수 간호팀장은 “의사들의 기도는 수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료진의 소명을 확인하는 작업 같다”며 “직업의식이 아닌 소명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연세대학교 의료원 원목실은 ‘기도로 함께하는 의사 프로젝트’ 실시 후 의료진에 대한 신뢰도는 증가하고 의료사고는 감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환자의 심리적 안정감을 높이고 의료진의 마음가짐을 점검해 의료원의 기독교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종훈 원목실장 겸 교목실장은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나약해진 환자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는 ‘기도로 함께하는 의사 프로젝트’는 스님들도 기도를 부탁할 만큼 대부분의 환자들이 요청하고 있다”며 “이는 세브란스병원의 기독교적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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