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김미나] 이름 기사의 사진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어느 때보다도 어수선하게 새해를 맞았다. 망가진 나라 모습에 기가 찼다가 이젠 감정의 파동조차 사라진 시점에 달했다. 더 이상 놀랄 일이 없다. 쏟아지는 해괴망측한 뉴스엔 염증이 났다. 이토록 절망적인 뉴스뿐이란 사실은 참담하다. 와중에 기억에 남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 국회 소속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이다. 단정한 단체복을 입고 의자를 하나씩 꿰찬 그들은 얼굴사진과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명찰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단상 앞쪽엔 ‘한 가족이 된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도 붙었다. 지난 2일 국회 청소노동자의 직접고용을 기념한 신년 행사의 한 장면이다.

한 근로자는 “국회 사무처 직원이 됐고 국회 사무총장님이 우리의 대표가 됐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며 “총장님이 새해 첫날 200여명 근로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넣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문자까지 보내주셨다. 거기서 다시 한번 놀랐다”고 했다.

이들은 이름을 찾았다. 올해부턴 기간제로 2년 근무한 뒤 60세까지 무기계약직 신분으로 정년을 보장받는다. 노동조합을 꾸려 활동하면서 국회 사무처와 단체협상을 할 수 있고 교통비나 명절 상여금 등 복지 혜택도 돌아간다고 한다. 외부인을 의미하는 출입증 대신 이름이 붙은 신분증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큰 감격이다. 마땅히 그랬어야 하는 일인데 이를 위해 지난 3년간 싸웠다. 국회 출입증 아래 쓰인 이름 세 글자를 보며 붉어진 눈시울에선 그간의 설움이 고스란히 다가온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2016 비정규직 노동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644만4000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1962만7000명)의 32.8%를 차지한다. 3년 연속 증가세다. 오늘도 수많은 ‘무명’의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바퀴 하나를 굴린다.

한시적 근로자, 파견 근로자, 용역, 특수형태…. 여전히 실체가 썩 와 닿지 않는 구분법이다. 누구도 이들의 이름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이름 불리지 못하는 설움과 불안은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꿈을 좀먹는다. 소속감을 느끼고, 일터와 직업의 가치를 실현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만든다.

일한 만큼 보상받을 수 없다는 근본적 차별에, 추위와 더위 앞에선 ‘냉난방 차별’이, 목숨을 거는 위험 상황에 처했을 때는 ‘위험수당 차별’에 시달린다. 아이를 맘껏 맡길 수도 없는 ‘보육 차별’까지 당하는 처지다 보니 ‘비정규직의 대물림’ 같은 씁쓸한 말까지 나돈다. 여기서 오는 분노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 에너지로 치환될 리 없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병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된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가 사회보장제 앞에 무너지는 이야기가 담겼다. 작품 속 영국은 비교적 탄탄한 사회보장제를 가지고 있지만 블레이크에겐 허상이다. 목적을 잊은 관료제하에서 세상은 그를 블레이크란 이름 대신 보험가입번호로 대할 뿐이다. 찾아가 만나려 해도, 전화 수화기를 잡고 1시간48분이나 기다려도 말 한마디조차 나눌 수 없는 절망감. “매뉴얼대로 하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정부 행태 앞에서 그는 분통이 터진다. 큰 맘 먹고 ‘하사’하는 듯한 만남에선 그 스스로가 최소한의 사회적 보호를 받기에도 ‘부적격’하다는 대답만 돌아온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는 거지요.” 소리친 그는 자신을 냉대한 복지센터 벽 앞에 선다. 그리곤 이름을 쓴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라고.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던 이름을 스스로 부른다. 그가 내놓는 마지막 외침은 지금 우리 사회에도 크나 큰 울림을 준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번호 숫자도, 화면 속의 점도 아닙니다. 묵묵히 책임을 다하며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굽실대지 않고 이웃이 어려우면 기꺼이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나의 권리와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혼돈 속에 시작된 2017년은 어느새 한 주가 지났다. 국민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기대감은 공중으로 분해됐다. 허나 사회 곳곳에서 이름 없이 살아가던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기억하는 새해가 됐으면 한다. 더 이상 지탄받는 이의 이름이, 그와 얽힌 또 다른 이름이 등장하진 않았으면 한다.

김미나 국제부 기자 mina@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