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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 한국의 길을 묻다] <3> “혁명 열매 늘 기득권에… 이번엔 다르다는 희망 봤다”

<3>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

[지성에 한국의 길을 묻다] <3> “혁명 열매 늘 기득권에… 이번엔 다르다는 희망 봤다” 기사의 사진
창비학당 이사장으로 있는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사옥에서 인터뷰를 갖고 탄핵 정국과 촛불 집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부모와 자식 간 대화가 끊어졌는데, 이번 사태로 공동의 화제를 발견하고 대화 공동체로서의 가족이 부분적으로 복원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탄핵 정국에서 얻은 뜻밖의 소득”이라고 말했다. 윤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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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염무웅(76) 영남대 명예교수는 현실참여 지식인의 아이콘이다. 단적인 예가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한국작가회의 전신) 결성에 적극 관여한 것이다. 당시 발표된 ‘자유실천 101인 선언’의 선언문은 그가 작성했다. 덕성여대 교수로 있던 그는 이로 인해 강제해직됐고 유신체제가 끝난 뒤에야 영남대 교수로 강단에 복귀했다. 이런 사실은 그가 60년 4·19혁명, 87년 6월항쟁 등 현대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겪어왔음을 보여준다.

스스로를 “책 읽고 글 쓰는 게 본업”이라고 규정하는 그는 70대의 나이에 흔치 않게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문학에 대해, 시국에 대해 논평하기도 한다. 영원한 현역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의 격변기, 한국호의 길을 묻기 위해 국민일보가 그를 만난 이유이다. 경기도 군포에 살면서도 거의 매번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갔다는 그는 “이번 촛불시위에서 희망을 봤다. 매번 혁명의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과실은 기득권이 챙겨가고 과거의 판이 되풀이됐는데 이번에는 다를 거라는 기대와 희망이 생긴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세밑인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사옥의 창비학당 이사장실에서 이뤄졌다.

-촛불집회가 과거 시위문화와는 많이 다르다.

“뜻밖의 소득이 있더라. 촛불시위를 하고 돌아가는 그 만원 전철 안에서 사람들이 보여주는 태도를 보면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등 굉장히 문화인 교양인이 되어 있더라. 교양은 정치의 근본을 이루는 부분이다. 국민 대다수가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고 각박하게 살지만 악착스러움을 벗어던지고 본연의 인간성을 잠시나마 되찾는 경험을 한다고나 할까. 국민이 이렇게 되도록 정치가 해야 하는 것인데, 정치인은 여전히 촛불집회의 열매만 따먹을 궁리만 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의 뿌리를 들여다보자면.

“비선실세의 문제보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예를 들면 광복 이후 일제 잔재 청산이 안 된 데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정의에 대한 감각이 바로잡혀 있지 않았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에서는 나치 전범자들에 대한 한바탕 바로잡기를 했다. 프랑스만 해도 대독협력자 수천명을 처형하지 않았나.”

-과거 청산과 최순실 게이트가 어떻게 연계되나.

“한국사는 동학혁명 3·1운동 4·19혁명이 그랬듯이 지배계급에 의한 적폐를 청산하려는, 지배계급과 민중운동 세력 간의 대결의 역사였다. 그러나 민중의 움직임이 제대로 된 정치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그 열매는 기득권 세력이 다시 가져가는 식이었다. 시인 김수영은 그래서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었다”고 개탄했다. 지금도 우리는 그런 상황이 될 위험을 앞두고 있다. 촛불집회는 박 대통령 퇴진만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일종의 혁명적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원하는 목표까지는 못 가더라도 4·19와 6월항쟁 때와는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다른가.

“거대한 대중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촛불집회는 새로 할 때마다 정치적 구호가 점점 구체화되고 상황 전개에 따라 발전했다. 유명 인사보다 일반 시민이 자기 견해를 주장하는 게 더 호응을 받는 것도 달라진 문화다. 심지어 여고생의 발언도 핵심을 찌른다. 광화문 집회가 집단 지성이 가동되는 장소로 변환되고 있다. 거기서 이뤄지는 정치적 견해가 기성 정치권에 대한 압력으로 되고 있다. 이거야말로 중요한 변화다. 시민들 속에 잠재돼 있던 역량이 바야흐로 현재화된 현상이다. 혁명의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그 판이 되풀이됐었는데, 이번에는 달라지지 않겠냐 하는 기대, 희망이 생긴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탄핵 이후 1차적인 과업은 제대로 된 정부의 구성이다. 정부다운 정부, 민주적인 정부로 돌려놔야 한다.”

-개헌이 답이 될 수 있나. 개헌 시점이 논란이다.

“개헌을 입에 올리는 사람을 신용하지 않는다. 뭔가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개헌이 이야기되는 순간, 세상을 바꾸자는 촛불정국이 개헌정국으로 바뀌게 된다. 개헌정국으로 바꾸어 촛불의 열매를 가져가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개헌보다 더 중요한 건 헌법에 손대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예컨대 프랑스식 대선 결선투표제가 필요하다. 대선 후보 1, 2등만 두고 한 번 더 투표하는 것이다. 결선투표제가 개헌 없이 선거법만 고쳐도 가능하다면 꼭 해야 한다. 의회 구성도 왜곡돼 민의를 대변하지 못한다. 사표가 너무 많아서 그렇다.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필요하다. 현재는 국회의원 300명 대다수가 당만 다르고 비슷비슷한 사람들이다. 정당명부식비례대표제로 하면 국민의 의사가 좀 더 고르게 반영될 것이다. 지금은 다 고위관료 출신, 지방 토호, 장성 출신 등 잘나가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한다. 현재의 구조에서는 노동자나 농민은 국회의원이 될 수 없다. 국회의원 선거제도 바꾸는 것이 곧 의회 권력의 성격을 바꾸는 것이다. 결선투표제로 정부가 달라지고, 정당명부식비례대표제로 의회 성격이 대폭 달라지면, 박근혜정부 같은 엉뚱한 정부가 원천적으로 생겨나기는 어렵다.”

-개헌 자체에 반대하나.

“반대한다기보다는 그 내용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선 후보들이 자신들의 공약사항에 개헌 내용을 집어넣으면 된다. 그걸 공약사항으로 내세우면 내용을 둘러싼 국민투표를 겸할 수 있게 된다.”

-역시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던데.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오히려 문인들이 자기 역할을 했다는 증거로 남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인과 예술가들이 현장에 있었다는 증거이다.”

-지난해 소설가 한강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았다. 하지만 노벨 문학상은 지금껏 없었다. 문학평론가로서 한국문학에 대한 평가를 해 달라.

“한강씨는 아주 훌륭한 작가다. 소설도 잘 쓰지만 상 받은 이후 보여준 태도도 굉장히 호감을 샀다. 소설 잘 쓰는 것 못지않은 인품을 보여줬다. 그 자체가 한국문학의 성숙함의 일단을 보여준 것이다. 문단과 문학의 흐름을 보면 70년대 이후 40년간 한국문학은 놀랄 만큼 발전했다. 활짝 개화했다. 단군 이래 문학이 이렇게 융성을 이룬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상이 뭐가 중요한가. 그건 영어로 잘 번역이 돼야 하는 것이니까 딴 문제다. 한국문학은 그 축적된 작품의 질과 양이 외국에 너무 덜 알려져 있다. 광화문 촛불집회에 문인들이 많이 참가한다. 한국 작가들처럼 이렇게 현장의 경험을 중시하는 작가도 다른 나라에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문학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문학평론가로서의 염무웅은 현실참여 문학을 강조한다. 리얼리즘 문학, 농민문학, 민족문학 등 활발한 비평 활동을 통해 1970년대부터 일선 문예비평가의 선두에 섰다. 창비는 그의 또 다른 정체성이다. 그는 1968년 계간 ‘창작과비평’의 편집 동인으로 참여한 이래 편집주간과 대표를 지내며 진보 성향의 출판사 창비를 이끌었다.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났고 서울대 독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등을 지냈다. 현재 창비학당 이사장. 주요 저서로 평론집 ‘민중시대의 문학’ ‘문학과 시대현실’ 산문집 ‘반걸음을 위한 생존의 요구’ 등이 있다.

글=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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