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지호일] 대통령의 시간 기사의 사진
얼마 전 개봉한 ‘가려진 시간’은 시간이 멈춘 세계에 갇힌 고아 소년의 얘기를 담은 영화다. 숲 속 동굴에서 발견한 의문의 알을 깨뜨리자 세상은 멈추고 소년의 시간만 흘러간다. 소년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 현 세상에 돌아오지만 홀로 나이를 먹어 어른이 돼 있었다. 영화를 보고 있자니 박근혜 대통령이 떠올랐다. 동심 가득한 판타지 영화에서 웬 대통령이냐고? ‘시간에 갇혔다’는 설정 말고는 대통령의 사고방식, 처신이 도무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시대를 살지만 정신은 다른 시대에 속해 있는 것 같은 괴이함.

“어릴 적 (청와대) 녹지원 나무에 그네를 묶어서 놀려고 하다가 아버지가 나무 상한다고 못하게 했던 기억이 있어요.”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30년 전에는…”이라며 과거에 대한 향수부터 끄집어냈다. 아버지가 지배하던 나라의 영애이던 때, 대통령의 시간의 톱니바퀴는 그 시절에 멈춰버렸는지도 모른다.

기업들 돈으로 하루아침에 재단을 만드는 일도, 정부 색깔에 맞지 않는 인사들을 묶어 쳐내는 일도, 행차 때마다 화장실 변기를 바꾸는 일도, 박 대통령 정신세계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태연한 얼굴로 “철학과 소신을 갖고 국정을 운영했는데…나를 완전히 엮으려 한다”는 말이 나왔을 터. 여기서 청와대 안의 관저는 시간을 잡아먹는 동굴이 된다. 대통령은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를 진짜 세상인 것으로 여기면서, 시간의 가림막으로 만든 성역을 흔들려는 이들을 향해 경멸과 적의를 보냈다. 청와대 밖 세상과의 소통은 ‘나를 알아주는’ 최순실과 오랜 가신들을 통해 이뤄졌다. 서로만의 공간에서, 서로만의 암호로.

영화 속 시간이 어긋난 소년과 소녀의 관계는 아련한 여운을 남기지만 시대와 충돌하는 대통령은 분노와 법적 단죄를 남긴다. 박 대통령의 판타지는 멈춰진 시간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요란하게 무너져 내리는 중이다.

글=지호일 차장,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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