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유영만] 뜨면 추락하고 날면 비상한다 기사의 사진
국내선보다 국제선 활주로가 넓고 긴 이유는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서다. 활주로가 짧으면 높이 날아오를 추진력과 기동력을 확보할 수 없다. 사람은 저마다 활주로를 갖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스스로 날아오르기 위해선 묵묵히 비상의 기반인 활주로를 닦는 수고와 정성이 필요하다. 빨리 날아오르고 싶은 욕망 때문에 활주로를 넓고 길게 닦는 수고와 노력을 그만두면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없다. 활주로 없이 비행기가 비상할 수 없듯이 날아오를 기반 없이는 하늘 높이 비상할 수 없다. 위대한 아이디어나 생각만으로 활주로를 닦을 수 없다. 밖에 나가서 묵묵히 땀 흘리는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 책상머리에 앉아 잔머리만 굴려서는 활주로가 생기지 않는다. 성공하는 사람은 앉아서 침 흘리지 않고 나가서 땀을 흘린다. 밖에 나가 땀 흘리는 사람이 앉아서 침 흘리는 사람보다 건강하다. 역설적으로 우유를 배달해 마시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며 땀 흘리는 사람이 더 건강한 이유다.

땀을 흘리는 사람은 남들이 어떤 일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염두에 두지 않고 꿈의 목적지로 날아가는 데 필요한 기반과 내공을 부지런히 닦아나간다. 인기 연예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떴다가 소리 소문도 없이 추락하는 경우가 있다. 왜 오래 날지 못하고 우리 곁에서 멀어지는 것일까. 물고기가 죽으면 뜨지만 살아 있으면 날 수 있다. 타인의 힘을 활용하거나 운이 좋아서 뜰 수 있지만 뜨고 나서 오랫동안 날아가려면 자체 추진력이 필요하다. 날아가기 위해서는 날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비축돼 있어야 한다. 연예인이 갑자기 떴다가 순식간에 추락하는 이유는 스스로 날 수 있는 내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날아가기 위해서는 내 힘으로 오랫동안 더 멀리 날 수 있는 내공이 필요하다. 그 내공 연마는 하루아침에 순식간에 되지 않는다. 아래로 뻗은 뿌리의 깊이가 높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결정하듯 내가 닦은 활주로의 폭과 길이가 내가 날아올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결정한다.

더 오랫동안 멀리 날아가기 위해서 때로는 순풍보다 역풍을 거슬러 날아올라야 한다. “원천(源泉)에 가 닿기 위해서는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흐름을 타고 내려가는 것은 쓰레기뿐이다.” 폴란드 시인,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의 말이다. 깊은 바다에서 살다가 산란기가 되면 자신이 태어난 강, 즉 모천(母川)으로 되돌아오는 연어의 귀환은 그 자체가 신비이자 경이로운 기적이다. 모천으로 돌아가는 길은 순탄치 않다. 길목마다 발목을 잡는 천적이 있고 한 번에 뛰어오를 수 없는 장벽이 기다리고 있다. 장벽 너머에선 천지가 개벽하는 새벽이 기다린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연어는 먹지도 않고 산란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알이 제대로 부화하기까지 마지막 힘을 다해 알을 보호하다 거기서 생을 마치는 연어를 생각하면 신기함을 넘어 영험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수만리 떨어진 곳까지 다시 정확하게 찾아오는 연어의 기억력과 그 과정에서 숱한 위기를 극복하는 백절불굴의 의지는 감히 인간이 자세를 낮추고 배워야 할 소중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바람개비가 힘차게 돌아가려면 역풍을 맞아야 한다. 바람개비는 맞바람에 부닥치며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야 힘찬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사람도 이처럼 역경을 뒤집어 경력으로 만들어내는 고생이란 인생학교에서 영원히 배우는 학생이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진퇴양난의 딜레마를 겪어보고, 극한의 한계상황에서 어떤 대책도 먹히지 않는 속수무책인 안타까움을 온몸으로 부딪혀 보며,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하얀 밤을 지새운 경험은 모두 책이나 학교에서 배울 수 없다. 오로지 인생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체험적 지혜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는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체험의 흔적을 시간의 점(Spot of Time)이란 말로 표현했다. 살아가면서 한 사람이 겪는 모든 체험적 도전, 인간적 자극, 책을 읽으면서 생기는 지적 깨달음이 모두 시간의 점으로 몸에 기억된다. 이런 시간의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이면 면이 되는 것이다. 한 인간의 면모는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체험의 점들이 어느 순간 선으로 연결되고 면으로 나타나 그 사람 특유의 인간다운 면모와 품격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지난 한 해 우리가 경험한 모든 힘든 시간의 점은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면모로 변신할 수 있는 체험적 지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난 한 해의 소중한 체험을 토대로 일상에서 비상하는 한 해를 만들어나가는 일만 남았다.

유영만(한양대 교수·교육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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