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나는 이런 후보를 찍겠다 기사의 사진
대선은 사실상 시작됐다. 후보군을 꼽아보니 10명이 넘는다.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내가 가진 한 표를 어떤 후보에게 줄지 고민을 시작할 때가 됐다. 한 표 한 표가 소중한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후보 선택 기준도 중요하다. 유권자 개개인의 선택 기준을 모아 공통분모를 찾으면 그것이 곧 시대정신일 테다. 성급한 후보들은 벌써 그에 부합하기 위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이참에 나도 그동안 생각해 온 기준을 정리해보려 한다.

나는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은 이제 내다버리자”고 말하는 후보를 찍겠다. 새누리당 탈당파가 신당 명칭에 ‘보수’란 단어를 넣으려 했을 때 제정신인가 싶었다. 박근혜정부의 실패를 보고도 여전히 진영에 기대려는 모습은 애처롭다. 박 대통령은 진영논리를 가장 노골적으로 활용했다. 보수진영 몰표로 51%를 득표해 당선됐고, 그 진영 입맛에 거슬리는 공약은 가차없이 폐기했으며, 4년간 콘크리트 지지율을 누렸다. 이 정부에서 단 한 번이라도 국론이 제대로 모아진 적이 있었나. 세월호 참사와 북핵 사태 같은 국가적 위기에도 진영갈등이 끼어들었다. 진영정치가 생산해낸 것은 블랙리스트뿐이다.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든 여소야대 상황에 놓인다. 진영을 벗어나 새로운 차원의 지지기반을 만들어내는 후보가 있다면 그에게 표를 주겠다.

나는 “공평한 기회만으로는 충분히 공평하지 않다”는 말에 공감하는 후보를 찍으려 한다. 이명박정부는 임기 후반에 ‘공정(公正)’을 화두로 꺼냈다. 이 대통령은 “누구에게든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공정한 사회”라고 했다. 당시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논리를 폈다. “100m 달리기를 하면서 모래주머니 달고 뛰어야 하는 선수가 있다면 같은 호각소리에 출발한다고 공정한 경주가 되겠나. 가난한 아이에게 무상교육 해준다고 기회가 공평해지지 않는다. 그 아이가 제대로 공부하려면 가정에서도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그러려면 가난한 부모에게 아이를 보살필 최소한의 수입이 보장돼야 한다. 기회뿐 아니라 결과(부모의 소득)도 어느 정도는 공평해야 기회가 정말 공평해진다.” 한국사회의 격차는 정유라씨 입에서 “돈도 실력이다. 네 부모를 원망하라”는 말이 나올 만큼 고착화됐다. 공평한 기회를 위해 ‘어느 정도는 공평한 결과’를 만들자고 설득할 수 있는 후보가 있다면 그를 선택할 것이다.

나는 “4차 산업혁명은 ∼이다”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 있는 후보에게 투표하겠다. 1999년 개봉한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이명세 감독이 연출했다. 이 감독은 영화를 찍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압축하고 또 압축해 한 단어로 만든 뒤에야 촬영을 시작한다. 살인범과 형사가 끌어가는 이 시나리오를 그가 압축한 단어는 ‘추적’이었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시종일관 사물의 본질을 보라고 말한다. 마크 저커버그는 그리스 고전을 읽고 가장 우수한 논문을 쓴 10명에게 졸업식에서 월계관 씌워주는 사립고교를 나왔다. 페이스북이 성공한 건 그가 소셜네트워크의 본질을 꿰뚫어봤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4차 산업혁명이 트럼프의 보호주의나 중국리스크보다 우리 경제에 훨씬 큰 파장을 몰고 올 거라고 본다. 과거 정부의 신성장동력 따위로는 대처할 수 없다. 그것이 가져올 패러다임 변화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후보에게는 망설임 없이 표를 줘야 한다.

이 세 가지를 갖췄다면 그가 과연 투명한 정부를 위한 제도 정비에 나설 것인지, 87년 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개헌을 해낼 것인지를 보겠다. 정책은 그 다음이다. 이런 조건을 충족한 후보라면 얼토당토않은 정책을 내놓을 리가 없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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