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행적 밝히랬더니… ‘보고서의 분 단위 행적’만 나열 기사의 사진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1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3차 공개변론을 주재하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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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1001일 만에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밝힌 2014년 4월 16일의 행적은 오전 9시53분부터 시작된다. 단원고 학생이 최초 119신고를 한 건 같은 날 오전 8시52분, 국가안보실이 청와대 내에 세월호 관련 긴급 문자메시지를 뿌린 건 오전 9시24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설치된 건 오전 9시45분이다. 박 대통령은 사고 직후 1시간여 자신의 행적은 여전히 밝히지 않았다.

그나마 제출한 내용도 본인의 행위라기보다는 각종 보고서를 서면으로 받아 본 행적을 분 단위로 정리한 것이 주였다. 지난달 9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이것이 팩트’라고 제시한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답변서를 읽은 헌재는 “보고·지시도 물론 중요하지만, 피청구인이 기억을 살려서 당일 했던 행적을 밝히라”고 꼬집었다.

보고서 읽기만 한 3시간41분

박 대통령은 10일 헌재에 “오전 10시쯤 국가안보실로부터 세월호 침수 사고에 대해 처음 서면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이 “대통령이 어디에 계신지 몰라 두 곳으로 보냈다”고 한 그 서면보고다. 신체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제2의 본관’인 관저 집무실에 있었다고 박 대통령 측은 헌재에 답변했다.

오전 10시 ‘1보’를 시작으로 박 대통령은 계속해서 세월호 사고 관련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10시15분에는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여객선 내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해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김 전 실장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7분 뒤인 오전 10시22분 다시 김 전 실장에게, 10시30분에는 해경청장에게 전화해 전원 구조를 당부했다.

이 시점부터 오후 2시11분 김 전 실장에게 상황 파악을 지시할 때까지 박 대통령은 보고서들을 전달받기만 했을 뿐 약 3시간41분간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10시30분부터 기록된 행적은 주로 보고서들의 상신 시각이었고, 답변서에 적힌 박 대통령의 행위는 ‘검토’였다. 오후 4시10분 수석비서관 회의를 ‘BH 회의실’에서 열었다고 했지만,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주재했다. 경호실이 중대본 방문 준비를 완료했다고 보고한 오후 4시30분까지 박 대통령은 TV가 없는 관저 집무실에 머물렀다.

24시간 재택근무… 오전엔 왜

소추위원 측은 국가안보실이 오전 9시24분 “474명 탑승 여객선 침수신고 접수, 확인 중”이라는 문자메시지를 청와대 내에 전파한 점을 주목한다. 상황 전파 36분 이후에야 박 대통령에게 최초 보고가 이뤄졌다. 그것도 전령이 서류로 전했다. 그래야 했던 사정은 무엇인지, 36분간의 행적은 박 대통령이 헌재에 제출한 답변에 거대한 공백으로 비어 있다.

박 대통령에게 이뤄진 최초 보고가 국가안보실의 인지 시점 41분 이후라는 점도 석연치 않다는 게 소추위원 측의 주장이다. 국가안보실의 경우 오전 9시19분, 안전행정부 장관은 9시26분 방송사 YTN의 자막을 통해 세월호 사고를 인지했다고 앞서 밝혔다. 박 대통령이 모른 채 9시40분에는 중앙사고수습본부, 9시45분에는 중대본이 설치된 이유는 무엇이냐고 소추위원 측은 묻고 있다. 정작 박 대통령은 “대통령의 일상은 출퇴근 개념이 아닌 24시간 재택근무 체제”라고 헌재에 밝히고 있다.

결국 “적어도 9시30분부터 10시쯤까지 박 대통령이 국가안보실장이나 비서실장의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 명확하다”는 게 소추위원 측의 주장이다. 국민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골든타임’에 국가의 위기상황을 보고받기조차 못했다면 생명권 보호 의무를 어긴 것이라고 소추위원 측은 헌재에 의견서를 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20회 이상의 보고·통화가 이뤄지는 동안 본관·관저와 3분 거리에 있는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에 가지 않았다. 위성으로 현지 영상을 실시간 수신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해경 513함은 오전 11시10분부터 사고 영상을 중계하고 있었다. 8분 뒤인 오전 11시18분에는 세월호가 선수만을 남기고 가라앉는 장면이 전송됐다. 2분 뒤 국가안보실은 선체 침몰 사진과 함께 “161명 구조”라는 보고서를 관저로 보냈다.

답변서는 또 “(김장수 실장이)오후 2시50분쯤 인명 피해가 심각할 수 있다고 보고”했고, 10분 뒤 “피해 상황이 심각하다고 인식”했다고 밝혔다. 상황실이 혼란을 겪는 동안 박 대통령은 관저에 있었다.

박 대통령이 이날 처음 관저에서 나와 1.2㎞ 떨어진 중대본을 방문한 시각은 오후 5시15분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물었다.

글=이경원 나성원 기자 neosarim@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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