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한국 문화의 몰락]“죽어가는 한국 문화에 남은 건 권위주의뿐”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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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의 대가’로 통하는 최준식(61·사진)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그가 최근 내놓은 책 제목은 ‘한국 문화의 몰락’(주류성)이다. 그런데 처음 출판사에 제안한 제목은 달랐다고 한다. 원제는 ‘마지막 고언’. 왜 이런 문구를 내세우려고 했을까. 서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그토록 역설했지만 주위로부터 별 반응이 없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문화에 대해 말하려고 한 것뿐이다.’

‘한국 문화의 몰락’ 행간에서 묻어나는 건 안타까움과 짜증, 한탄과 자조다. 허례허식으로 가득한 관혼상제, 엉터리 언어습관, 도덕적 권위를 잃은 종교계…. 거두절미하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만 추리고 추려 가감 없이, 거침없이 쏟아낸 저작이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만난 최 교수는 “우리나라가 새로운 문화를 못 만들어내고 있어서 쓴 책”이라며 “가장 시급하게 고쳐야 할 문화는 권위주의”라고 했다.

“한국을 지배하는 게 유교 문화인데, 이게 가스가 빠진 청량음료 비슷해요. 유교 문화의 나쁜 점만 남아 있는 거죠. 권위에 대한 맹종, 자기 잇속만 차리는 행태…. 우리 사회의 근간을 바꿔야 해요.”

최 교수는 2013∼2015년 국정농단 사태의 한 축인 CF감독 차은택이 가담한 문화융성위원회에서 위원으로 활동했다. ‘한국 문화의 몰락’에는 유명무실했던 이 단체의 활동, 정부의 안일한 문화정책의 실상이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다. 가령 ‘문화가 있는 날’에 관한 내용은 이렇다. ‘정부는 이 날의 제정을 문화융성위원회에서 결정한 것이라 발표했는데 우리 위원들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중략) 아마 몇 사람이 모여서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고 졸속으로 결정한 결과일 것이다.’

눈길을 끄는 고발의 문장은 한두 개가 아니다. 직접 경험한 청와대 회의는 ‘연출된 쇼’였다고 규정했고, 청와대 인테리어는 ‘비루하기 짝이 없었다’고 혹평했다. 청와대 인테리어의 무엇이 문제인지 묻자 그는 “전통과 격이 느껴지지 않더라.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고 답했다.

최 교수가 내세운 문화적 난국 타개의 해법은 철저한 자율성이 보장되는 연구소 설립이다. 조선시대 집현전이나 규장각과 같은 국가의 ‘싱크 탱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연구소 설립이 궁극적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새 문화의 마중물을 공급해주는 기구라도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최 교수는 “이런 연구소 설립이 실현되긴 힘들 것”이라고 했다. 문화에 무지한 우리사회 분위기를 감안할 때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뉘앙스였다.

“한국인의 ‘수준’이 낮은 건 아니에요. 우리에겐 새 문화를 만들, 집단적 지성이 터져 나올 수 있는 물꼬가 필요해요. 우리나라에 ‘브레인’은 많아요. 이들을 하나로 연결시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줄 곳을 만들어야 해요.”

글·사진=박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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