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소녀들의 ‘침묵 시위’… 응답받을 날은 언제일까요 기사의 사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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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에는 듯한 바람에도 평화의 소녀상은 제자리를 지킵니다. 최저기온이 영하 5도까지 떨어진 1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노란 털모자를 쓴 소녀상은 덤덤히 앞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소녀상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시민들이 찾아와 예쁜 옷가지를 입혀줍니다. 사시사철 옷차림이 바뀝니다. 봄·가을엔 꽃무늬 스카프를 걸치고 여름엔 밀짚모자를 쓰는 소녀상은 이날 목도리와 넥 워머, 담요로 겹겹이 온몸을 덮었습니다. 이곳 종로 소녀상은 국내외 42곳에 있는 소녀들의 맏언니입니다. 2011년 12월 14일 1000회를 맞은 수요집회에 처음 선보였습니다. 소녀의 눈은 정면에 있는 당시 일본대사관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소녀상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선이 있습니다.

처음 소녀상이 등장했을 때 일본 정부는 “한국이 외국 공관을 향한 위협을 방치하고 있다”며 “빈국제협약에 반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외교문제라는 시선입니다. 결국 일본대사관이 소녀상을 피해 옮겨갔습니다.

그 뒤 여러 곳에 소녀상이 생겼습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부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따르면 소녀상은 국내 37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외국에는 미국 2곳, 중국 1곳, 캐나다와 호주 1곳씩 모두 5곳에 소녀상이 있다고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에는 2013년 7월 소녀상이 등장했습니다. 중국 상하이사범대학에도 있습니다. 해외 소녀상 설치에는 현지 한인들이 주로 힘을 썼지만, 인권단체와 여성단체들도 함께했습니다. 군위안부 문제는 한국만의 이슈가 아니라 전 세계 여성의 인권 문제라는 시선으로 소녀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민간단체를 내세워 소녀상을 공격해 왔습니다. 호주에서는 ‘호주·일본 커뮤니티 네트워크(AJCN)’ 대표 야마오케 데슈이가 소녀상이 “여성의 인권문제라는 틀을 넘어 반일감정을 드러내는 것으로 호주법이 금지하는 ‘다른 민족에 대한 비방에 해당’한다”고 비난했습니다. 소녀상이 한·일 두 나라의 민족 문제가 되어 증오감정을 일으킨다는 시선입니다. 가해자가 주장하기엔 뻔뻔하지만, 혹 민족감정에만 치우치진 않았는지 돌아볼 대목은 있습니다.

미국에선 일본계 극우단체 ‘역사의 진실을 요구하는 세계연합회(GAHT)’가 지난해 8월 글렌데일의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위안부 피해 여성이 20만명이 넘는다”는 소녀상 비문 내용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미국 연방법원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1일(현지시간) 기각했습니다. GAHT는 10일(현지시간) 법원의 기각 판결에 불복해 연방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시선입니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가 나왔습니다. 두 나라는 소녀상 문제를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이 합의로 소녀상은 다시 두 나라 사이 외교 사안이 돼 버렸습니다. 인권 문제로 소녀상을 지지했던 세계 곳곳의 시민들을 머쓱하게 만들었습니다.

두 나라 정부의 합의 이후 꼭 1년이 지난 지난해 12월 28일 막내 소녀상이 탄생했습니다.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가 부산 동구 초량3동 일본영사관 앞에 세운 소녀상입니다.

일본 정부는 정부 간 합의를 근거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주한 일본대사를 귀국시키고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을 중단한다며 한국을 몰아붙였습니다. 아베 신조 총리는 “10억엔을 냈으니 한국이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돈을 앞세운 거래로 여기는 시선일까요?

한국 외교통상부도 소녀상을 옮기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외교공관 보호와 관련된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와 해당 지자체·시민단체 등 관련 당사자들이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교훈으로 기억하기에 적절한 장소에 대해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10일 외교통상부 대변인)

시민들은 어떤 눈길로 소녀상을 바라볼까요. 10일 오후 12시30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회사 점퍼 주머니에 깊게 손을 찔러 넣은 유한빈(48)씨가 직장 동료들과 나란히 서서 아무 말 없이 소녀상 얼굴을 쳐다보다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빈씨는 “일본이 너무 당당해서 마음이 더 헛헛하다”고 전했습니다. 일본 관광객 나카무라(22)씨와 나오키(22)씨도 소녀상 앞에 섰습니다.

서울 종로의 소녀상 옆에는 작은 텐트가 있습니다. 소녀상 지킴이들의 보금자리입니다. 이들은 2015년 한·일 합의에 반발해 이틀 뒤부터 소녀상 곁을 지켜왔습니다. 대학생 윤재민(19)씨는 “며칠 새 소녀상을 찾는 시민들이 늘었다”며 “앞으로도 따뜻한 눈길로 소녀상을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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