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황주리의 나의 기쁜 도시] 고즈넉한 도시 크라쿠프 기사의 사진
황주리 그림
동유럽 여행길이 처음 열린 지 얼마 안 되어 뉴욕에서 맞은 서른다섯 해의 생일을 자축하며 나는 그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때만 해도 많지 않던 미국이나 서유럽 여행객 중에 고향이 동유럽인 사람들이 특히 많았다. 여행은 기억이다. 그 기억이 100% 현실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여행자의 감정 상태에 따라 여행길에서 부딪쳤던 사람들의 기억에 따라 다르게 채색되는 내 첫 번째 폴란드 여행은 고즈넉한 잿빛의 기억이다. 특히 중세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던 폴란드 크라쿠프의 세상 그 어느 곳과도 구분되는 고즈넉함이 며칠 전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다시 보며 새삼 떠올랐다. 그 잿빛의 기억은 두 번째 갈 때도 세 번째 갔을 때도 다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유서 깊은 색깔의 기억이었다. 두 번째 여행은 서른 살에 만났던 사람을 오십 살이나 육십 살에 다시 만난 것과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전쟁에서도 신기하게 중세 모습 그대로 간직한 그 유서 깊은 도시의 기억 중 구시가의 한가운데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던 동유럽 최고의 대학 야기엘론스키대학이 기억난다. 지하로 내려가면 동굴처럼 안온하고 유서 깊은 카페들의 기억도 생생하다. 길가의 갤러리에서 만지면 예술적 감성이 손으로 묻어나는 듯 오직 거기서만 살 수 있었던 포스터들을 헐값에 무더기로 샀던 기억이 난다.

가난한 상황이라 종이는 너무 얇았지만 닫혀 있던 시절의 시간들을 담은 내용은 깊고 암울하고 고독했다. 마치 내 서른다섯 살의 고독처럼 찬란했던 잿빛 고독의 도시에서 나는 가는 곳마다 쇼팽을 들으며 커다란 잔에 가득 채워주는 커피를 마셨다. 이름 없는 악사들이 연주하는 쇼팽은 내게 더 실감이 났다. 조미료라는 유명세와 기교가 들어가지 않은 서툰 악수 같은 소리, 그 소리의 기억이 아직도 그립게 남아있다. 지구상 수많은 방 중에서도 고색창연한 프라하 같은 곳과는 아주 다른 고즈넉한 침묵으로 조용히 빛나던 크라쿠프에서 나는 고독을 즐겼다. 고독이 사랑보다 아름다웠던 서른다섯 살의 가을, 여행 길 중 동양인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미국이나 서유럽에서 여행을 온 사람들 중에는 폴란드에서 살았던 유대인들이 많았다. 영화 속에서만 보았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갔을 때 그 안에서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다는 유대인 자매 할머니 두 분은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고향은 그립지만 아우슈비츠의 그 아픈 기억을 돌아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같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둘러본 사람들 중에는 은퇴여행을 온 미국인이 다수 있었는데, 그중 많은 수가 한국 6·25전쟁 참전용사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때가 24년 전이니 돌아가신 분들도 많을 것 같다.

소피의 선택,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등 명화로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가을 햇빛은 오래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평화로웠다. 수용소 창문 가득 퍼지던 잊을 수 없는 햇빛, 나는 문득 그곳에서의 한때를 기억하며 누군가의 이런 말을 떠올린다. “내가 자살하지 않은 것은 햇빛 때문이었다.”(신영복)

일을 하면 자유로워진다는 팻말이 쓰인 수용소 안으로 들어서면 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수용소 건물들과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가로수의 정경이 관광객을 맞는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철의 장막에 드리워져 오랜 세월 갈 수 없었던 곳이기에 아우슈비츠 방문은 뭉클한 느낌을 주었다. 매일 아침 살아남거나 죽으러 가는 자가 선별됐던 유대인들의 유품을 돌아보던 우리는 모두 침묵했다. 그들이 수용소로 들고 들어왔던 낡은 가방들과 가득히 쌓여 있던 안경들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그곳으로 들어오자마자 빼앗겼던 유대인들의 안경 무덤 속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질긴 ‘사람의 흔적’에 관한 절대불멸의 ‘시’를 보았다. 나의 안경 설치작업은 그 장면을 목격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곳에서 죽어간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인간이 써내려간 가장 슬픈 유서 중 하나일 것이다. 아마도 2000년 이후 그곳에 가본 사람들의 느낌과 1990년대 초에 갔던 사람들의 느낌은 많이 다를 것이다. 하물며 그곳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이야 어떠할까? 가스실의 연기로 사라져간 아이들이 남긴 그림들을 바라보며, 서른다섯 생일에 외롭다고 투정하던 내 아픔이 너무 티끌처럼 느껴져 부끄러웠다. 그때도 세상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전쟁 중이었고, 낯선 호텔에서 텔레비전을 켜면 CNN 방송에서 유고슬라비아전쟁의 참혹함을 보도하고 있었다.

또 수없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지구상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의 마음속도 그러하다. 다시는 그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없을 크라쿠프 구시가지가 눈에 밟힌다.

황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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