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태원준] 시간 빈곤 기사의 사진
미국 구글 본사에서 2007년 이메일 관리법 강연이 열렸다. 업무 대부분을 이메일로 처리하는 회사답게 많은 직원이 참석했다. 강사로 초빙된 메를린 만은 ‘메일함 비우기(Inbox Zero)’란 이론을 설파했는데, 아주 단순하다. 분류 기준을 정해 답장할 건 바로 하고, 시간이 필요한 건 ‘할 일 목록’에 넣고, 나머지는 적당한 보관함에 보내서 ‘받은메일함’을 그때그때 말끔히 비우라는 것이다. 메일이 쌓이는 건 업무가 쌓인다는 뜻이다. 메일함을 비우면 업무 중압감이 해소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게 되니 나를 위한 시간을 더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방법은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 블로그마다 깨끗이 비운 자기 메일함의 인증샷을 올리는 게 유행이었다. 만은 강연과 컨설팅 의뢰가 쇄도해 돈도 많이 벌었다. 메일함 비우기 책을 내자는 계약도 맺었는데, 이 책은 나오지 못했다. 메일함을 그때그때 비웠더니 더 많은 메일이 날아오고 더 많은 업무를 하게 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거래처에 신속히 답장을 보내면 일의 진행이 빨라져 다음 단계 이메일이 더 일찍 날아온다. 상사 지시에 바로바로 응하면 일을 잘한다고 생각해 계속 일을 맡긴다. 뭉그적대다보면 저절로 해결되는 일도 꽤 있는데 이 방법은 그런 기대를 접어야 한다. 2년 뒤 만은 자신이 틀렸음을 고백하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1930년 영국 경제학자 존 케인스는 100년 안에 인간 노동시간이 주당 15시간 이내로 줄고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남는 시간에 뭘 하느냐가 될 거라고 예측했다. 경제가 성장하고 효율성·생산성이 높아지면 인류가 생산 대신 다른 쪽에 시선을 돌리게 될 줄 알았는데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메일함을 비워 창출되는 효율성이 효율적 여가 활용으로 이어지지 못하듯, 자본주의 체제에서 향상돼온 효율성과 생산성은 늘 우리에게 더 많은 일을 찾아주곤 했다.

일주일이 아니라 하루 15시간을 일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우리나라 정부가 국민 여가활동을 조사해 발표했다. 평균 여가시간이 평일 3.1시간, 휴일 5.0시간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희망사항은 평일에 4시간 쉬는 거라는데 2010년 이후 계속 줄어들고만 있다. 하루에 4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시간 빈곤’의 일상이 너무 팍팍하다. 글=태원준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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