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당신도 大觀細察 능력이 필요하다 기사의 사진
정치리더십이나 CEO리더십에 필요하다고 꼽히는 덕목이 있다. 대관세찰(大觀細察). 크게 보고 또한 세세하게 살핀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숲도 보고 나무도 보라는 것인데,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라고 하니 공자님 말씀 같기도 하다. 좀 세련되게 표현하자면 대관은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시켜 명쾌하게 정리할 줄 아는 능력이고, 세찰은 단순한 또는 초기의 사실을 세밀히 뜯어보고 전체 상황이나 예상을 추론해 내는 능력이다. 대관만 하면 구체성 없는 담론으로 공허하기만 하다. 세찰만 하면 디테일 속 악마와 싸우다 큰 기회와 방향성을 잃어버린다. 대관세찰, 참 어려운 주문이다.

박근혜정권은 통일·외교 정책을 크게도, 세세하게도 살피지 못했다. 최악의 대북정책이나 3NO만 외치던 사드 배치의 갑작스러운 결정과 장소 번복, 일본과 눈도 안 마주치다가 이상한 문구로 전격 합의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결국 주변국으로부터 이리저리 차이는 처지가 됐다. 리더십이 대관세찰할 능력이 없으면 이렇게 된다.

지나간 것은 그렇다 치고, 앞으로는 잘해야 한다. 앞을 얘기하려면 역시 잠재적 대선 후보들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조만간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후보들은 너도나도 자기가 촛불민심을 업었다고 얘기한다. 문재인은 “촛불민심이 원하는 대개혁의 적임자”라고 말한다. 병역기간 1년 등 내놓은 개혁방안을 꼼꼼히 살펴보면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지지율 1위 분위기에 붕 떠서 가는 형국이다. 통합을 외치는 반기문은 “외국에 자랑스러운 촛불”로 치켜세운다. 정치가로서 나라를 어떻게 하겠다, 어떤 방법으로 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정치를 추상(抽象)으로만 할 모양이다. 정의와 공평을 내세우는 안철수는 자신의 가치를 구현해줄 뚜렷한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 “촛불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어떻게 새정치를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표가 적지 않다. 모두 촛불민심을 끌어들이지만, 실제로는 끌려가면서 눈치만 보는 꼴이다. 변화와 적폐청산이라는 촛불의 분노와 요구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담대하게 방향성과 구체성을 제시할 능력이 없는 건가. 자기 언어로 말하지도, 민심을 이끌 리더십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군중의 목소리에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이다.

촛불민심이 원하는 방향은 옳고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그런데 절대선(善)은 아니다. 현실에서, 정치에서 절대선은 존재할 수 없다. 광장의 목소리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기에 존중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정치지도자가 여기에만 끌려가면 중우(衆愚)정치로 흐른다. 광장은 명분은 있되 익명성이 본질이다. 고로 책임성이 약하다. 감정적이고 휘발성이 강하다. 이분법적이다. 정의 아니면 불의로만 가르는 쾌도난마가 어찌 짜릿하지 않으랴. 그러나 그 정의를 어떻게 책임 있게 실현할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지도자는 이 지점에서 광장과 한 발 떨어져야 한다. “선비의 비판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김대중), “대의를 향한 열정, 책임감, 균형적 판단”(막스 베버)이라는 정치가의 덕목은 지금 후보로 나선 이들에게 유독 필요해 보인다.

후보들이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시민들이 요구해야 한다. 그들이 광장의 세세한 것도 살피고, 광장 너머 큰 그림도 그리도록 말이다. 그런 능력을 갖춘, 최소한 근접한 사람에게 권력을 위임해야 한다. 그러려면 유권자도 대관세찰할줄 알아야 한다. 정치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이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플라톤) 구슬이 서 말이면 뭐하나, 꿰어야 보배지.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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