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머크레이커가 필요하다 기사의 사진
20세기 초 미국은 거대 재벌들과 금권정치가 버티고 있는 나라였다. 지금은 기부와 자선의 아이콘이 된 록펠러와 카네기를 비롯해 존 피어몬트 모건, 밴더빌트 등은 무자비한 횡포로 경쟁자들의 시장 진입을 제한하고 독점을 강화해 ‘강도 귀족(robber barons)’으로 불렸다. 이들은 정치권에 검은돈을 갖다 바치며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록펠러가 설립한 스탠더드 오일을 석유업계와 의회 의사당까지 칭칭 감고 있는 문어로 묘사한 당시 만평은 정경유착의 단면을 보여준다.

정치 부패와 재벌 개혁에 처음 칼을 빼든 대통령이 시어도어 루스벨트다. 그는 첫 의회 연설에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각오라면 정계에서 폭력적 범죄를 뿌리뽑아야 하듯이 업계에서도 교활한 범죄를 척결해야 한다”고 했다. 독점 기업의 추문을 집요하게 파헤친다고 ‘머크레이커(muckraker)’로 불린 언론의 역할도 컸다. 아이다 타벨이 쓴 ‘스탠더드 오일의 역사’는 록펠러의 탐욕과 스탠더드 오일이 성장하기까지의 추악한 경영 행태를 들춰내 결국 1911년 스탠더드 오일이 해체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00년도 더 된 미국의 흑역사를 새삼 복기하는 것은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홍역과 무관하지 않아서다. 최순실 게이트는 우리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덩치만 커졌지 실상은 아프리카나 동남아의 부패 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각시켜줬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과 자동차 시장을 점령하며 국민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던 대기업들이 또 다시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 2002년 대선 때 차떼기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비자금 사건으로 검찰 포토라인에 섰던 기업도 부지기수다.

E H 카는 역사는 발전한다고 했는데, 학습효과도 없이 이런 구태가 반복되는 것은 왜일까. 자본의 힘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 거대한 자본권력에 정치권력과 언론이 기생하고 있다. 대기업 비리가 터질 때마다 역대 정권들은 여러 구실을 들어 면죄부를 주곤 했다. ‘경제가 어렵다’거나 ‘총수가 없으면 큰일 난다’는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은 보수 언론의 몫이었다. 기업들은 투자나 사회공헌을 통해 보은(報恩)하면 있던 죄도 깨끗이 사함을 받았다.

5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1987년 개헌 때 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든 김종인씨를 영입해 야권의 단골 메뉴였던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게 박근혜 후보였다. 그는 경영인의 중대 범죄에는 아예 사면권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대통령에 취임한 지 5개월 만에 “경제민주화가 기업을 옥죄어선 안 된다”며 부메랑처럼 회귀했다. 기업 나팔수 노릇을 하며 경제민주화를 무력화시키는 데 장단을 맞춰준 것은 보수 언론들이다. 공약만 제대로 지켰어도,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만 고수했어도 기업들은 법과 주주들이 무서워 최순실 일개 사인에게 줄을 서지 않았을 거다.

대선 주자들은 이번에야말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자며 재벌 개혁 방안을 쏟아내고 있다. 4대 재벌 개혁이니 재벌 해체니 서슬 퍼런 공약들이 나오지만 얼마나 실현될지 의문이다. 정부가 진짜 해야 할 일은 재벌 총수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그런 뒤 반칙하는 기업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에 따라 엄정히 처리하면 된다. 훗날 역사는 평가할 것이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라는 국민들의 염원이 타올랐던 중차대한 시기에 언론이 머크레이커 역할을 했는지, 아니면 꼭두각시 노릇을 했는지 말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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