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예수께서 우셨다 기사의 사진
한국영화 ‘1번가의 기적’은 명절 편성 단골 작품이다. 영화는 재개발 위협에 놓인 도시 산동네를 배경으로 한다. 원주민을 쫓아내고 아파트를 건설하려는 기업, 그들의 하청을 받은 용역 업체가 공동체를 깨뜨리는 과정을 그렸다. 용역 깡패 필제와 산동네 무명 복서의 딸 명란이 주인공이다. 필제는 속마음이 따뜻한 허당 깡패다. 각기 임창정과 하지원이 열연했다. 이 영화에서 짧지만 강렬한 눈길을 끄는 한 장면이 있다.

주민의 재개발 동의를 받아내기 위해 투입된 필제가 완장 차고 가가호호 방문, 문을 벌컥벌컥 열어 제친다. “여기 보호자가 누구야!” 그는 부모 없이 할아버지와 사는 어린 남매 일동과 이순을 몰아붙인다. “보호자가 뭐예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짜증난 필제가 “너희를 지켜주는 사람 말야” 하고 화를 낸다. 이때 두 아이가 벽을 올려다본다. 카메라는 벽에 걸린 한 인물을 잡는다. 예수 얼굴 액자이다. 크리스천이건 아니건 익숙한 예수 초상. 카메라 아웃.

1900년대 초 대한제국에 유복이란 어린이가 있었다. 미국 감리교 파송 선교사 미네르바 구타펠(1903∼12 한국 선교 활동) 여사가 실화를 바탕으로 선교 잡지에 쓴 ‘유복이’라는 글의 주인공이다. 유복이는 ‘죽어가는 엄마 옆에 있는 것을 친절한 선교사가 발견’한 다섯 살 거지 꼬마였다. ‘병들고 굼떴으며 몸집도 작았다. 작은 갈색 얼굴이 취할 수 있는 최대로 못생긴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의 머리는 이와 오물로 덮여 면도기로 밀어야 했다. 이런 그를 선교사들이 거두어 입히고 먹이고 치료했다. 그에게 구제품을 입히고 갈래머리를 따주자 ‘형언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아이가 됐다’고 했다.

그러나 유복이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는 줄 모르고 심통을 부렸다. “의사 선생님이 저녁 식사로 우유만 준다”고 억지였다. 이를 나무라면 병원 문을 향해 돌진, 머리를 박는 꼴통이었다. 구타펠은 ‘그의 속에 있는 사악한 귀신이 극도로 발동했다’고 표현했다. 유리 체온계를 씹어대기도 하는 ‘사악한 천재성’의 아이. 그럼에도 그들은 사랑을 쏟았다.

어느 날 그 병원에 ‘마귀 할머니’가 입원했다. 눈이 풀려 있었고, 머리를 풀어헤쳤다. 또 입에 거품을 물었다. 아들과 사위 품안에서 씨름하는 할머니. 서양 의사들은 진정제를 투여, 그 할머니를 치료했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할머니는 시트를 리본처럼 찢어 모든 사람을 절망에 빠뜨렸다. ‘귀신 들린’ 할머니였다.

이때 유복이가 등장했다. “에이, 못되고 나쁜 할머니. 여기 있으려면 착하게 굴어야 해요.” 그러자 할머니는 “오 내 새끼, 잃어버린 손자가 돌아왔구나…”라며 제정신이 됐다. 그런 유복이를 간호사들은 꼭 깨물어주고 싶었다.

유복이는 그 무렵 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그가 2년 동안 ‘완벽’하게 외운 성경 구절은 두 문장이었다. “예수께서 우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 앞뒤 자른 암기였다. 찬송가도 한 곡 ‘완벽’하게 불렀다. “예수 사랑하심은 성경에 쓰여 있네.” 그게 다였다.

그럼에도 유복이는 할머니에게 자신이 아는 복음을 ‘완벽’하게 전했다. 할머니가 광기를 부릴 때마다 “예수님이 할머니를 사랑하세요”라고 귓속말을 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광기가 멈췄다.

그리고 얼마 후 할머니가 먼저 천국에 갔다. 그러자 유복이도 급속도로 기력을 잃어갔다. 침상에 누운 유복이가 말했다. “사람들, 내 친구들은 모두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어요. 나도 피곤해요 선생님.” 참사랑을 알게 된 유복이는 그렇게 짧은 생을 마치고 보호자에게로 갔다. 유복, 일동, 이순의 보호자 예수였다. 어린 예수의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곧 설이다. ‘다음 세대’에게 진정한 보호자를 알려 주는 명절이었으면 싶다.

전정희 논설위원 겸 종교국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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