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대통령의 대포폰 기사의 사진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1976년 10월 25일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실업가 박동선씨가 미 의회 의원들에게 거액을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청와대를 도청해 우리 정부와 워싱턴에 거주하는 박씨와의 연결 고리를 알아냈다. 닉슨 정권하의 불법 도청 사건인 ‘워터게이트’에 빗대 당시 미국 언론들은 ‘코리아 게이트’라고 불렀다. 이 사건이 터진 뒤 정부가 도청을 막기 위해 한 일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도청방지 연구를 시키고, 청와대 창문을 삼중으로 겹겹이 세우는 것뿐이었다.

공작정치가 횡행하던 시절 55번이나 가택연금을 당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도청을 피하기 위해 학교에서 쓰는 칠판을 집에 걸어놓고 이희호 여사와 필담(筆談)을 나눴다고 한다. 블랙베리광(狂)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도청방지 조치로 휴대전화의 거의 모든 기능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평한 적도 있다. 2013년에는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 국가안보국(NSA)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 전 세계 35개 동맹국 정상들의 전화를 도청했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19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리 증인신문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차명폰(대포폰)을 사용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도청 우려 때문에 차명폰을 썼다고 진술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도용해 개통한 대포폰은 위법이다. 3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대포(大砲)는 무기를 뜻하기도 있지만 허풍이나 거짓말을 일컫기도 한다.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 대포폰이다.

지난해 11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장시호가 대포폰 6개를 개설해 그중 하나를 박 대통령에게 줬다”고 했을 때 청와대는 부인했는데 거짓말이었다. 2014년 대포폰과 대포통장, 대포차 등 3대 대포악과 전쟁을 벌이겠다고 했던 게 현 정부다. 대통령이 도청을 우려했다면 합법적인 비화(秘話)폰을 썼어야 했다. 떳떳하지 못한 일을 작당한 게 아니라면 범죄자들이 쓰는 대포폰을 썼을 리가 없다. 박 대통령은 야당 대표에게 “청와대가 아니라 조폭 공화국이고 범죄소굴”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글=이명희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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