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경원] 뻗치기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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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너무 피곤합니다.” 드디어 나타난 그는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었다. “제가 편지를 보냈던 그 기자입니다!” 따라붙으며 명함을 건네는 손을 그가 가볍게 밀어냈다. “명함은 이미 받았습니다.” 편지봉투는 열어 봤다는 뜻이다. “수석님, 몇 자 적어 올렸지만, 과연 박 대통령이….” 그가 굳은 얼굴로 카드키를 찍고, 경비실 불이 켜지는 사이 현관 유리문이 닫힌다.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그가 유리문 너머에서 한 차례 뒤돌아 목례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닿는 시간이 아마 고되었을 것이다.

“나오실 때까지 계속 여기 있을 겁니다!” 한밤의 엄포가 결국 거짓임은 그도 알고 나도 안다. 고대하던 만남들은 이런 식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주소만 알아도 절반은 성공이라며 들썩이던 마음은, 나의 근성이 남에겐 얼마나 폭력인가 하는 귀갓길의 자성으로 변했다. 스토커며 ‘기레기’를 운운하는 폭언은 다반사, 경찰을 부르려는 이도 있었다. “더 이상 쓰레기 기자들에게 시달리기도 싫고 말할 것도 없습니다.” 누군가는 그나마 문자메시지를 보내줬는데, 기사에 쓸 말이 없었다.

연락이 안 되면 찾아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고, 내 실패가 모든 기자의 실패는 아니었다. 허탕이 반복되면 독이 올라 문을 마구 두드리고 싶어졌다. 왜 말씀을 하지 않나, 지금 악인처럼 그려지고 있다! 그런 심정으로 어느 초인종을 눌렀더니, 해사한 여인이 문을 열어 놀란 일이 있었다. 문고리를 붙든 채 등 뒤로 다른 손을 내저어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며, “남편은 집에 없다”고만 말했다. 더 있지 못하고 간곡한 편지만 우편함에 넣었다. 답장이 없어 야속했는데 이제 보니 경찰도 그를 못 찾는다.

‘뻗대다’의 강조이겠거니…. 정작 하는 짓의 어원조차 모르면서, 분명한 말을 듣겠다며 ‘뻗치기’를 했다. ‘스위트 홈’과 ‘입춘대길’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들이 마냥 지루하진 않았다. “무례인 줄 알면서도 댁 앞에 있었습니다”라 할까, 곧장 “윗선이 거짓말을 지시한 겁니까”라고 물을까. 딴에는 고개만 끄덕여도 바로 기사로 적을 만한 질문을 준비하느라 바쁘고 설레었다. 그러다 막상 맞닥뜨리면 용건을 못 꺼내고 옷깃을 놓쳐댔다. 다음날 보고는 앙상했지만, 주변과의 대화나 전화 한 통이 괜히 고마워졌다.

어느 겨울 꼭 한번은 환대와도 같은 따뜻한 대접을 받았다. 막중한 책무와 명예, 시민들의 기대에 비하면 층계의 꽃들이 퍽 소박해 뵈는 집이었다. 그의 아들이 나와 “아직도 계시나, 아버지께선 언제 오실지 모른다”고 하기에 “신고만 하지 말아 달라”고 애걸했다. 잠시 뒤 또 문이 열려 이를 악물었는데, “어머니께서 드리라고 하신다”며 손난로와 대추차 한 잔이 건네졌다. 김이 오르는 그 차를 한참 바라보면서, 끝내 입에 대지 못했다. 어디 화장실이라도 찾는 틈에 그가 귀가하면 원통할 것 같았다.

타사 기자가 없는 ‘노마크 찬스’를 노리면서도, 이렇게 혼자 뻗치기를 할 때면 곤란한 상황이 없지 않았다. 지하주차장 엘리베이터와 중앙현관 출입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묘하게 더 춥고 졸렸다. 무엇보다도 취재원이 그냥 지나쳐 버리는 상황이 두려웠다. 한 명은 그냥 무시하던 이들도 ‘취재진’을 보면 한두 마디 입을 열 때가 있었다. 최후의 순간 매듭이 풀리던 경험들이 마약같이 발길을 붙들었다. 끽해야 새벽까지다, 도망갈 수는 없을 거야…. 뻗치고 있는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했다.

그나마 만나기나 해야 취재의 성공 실패를 알 수 있어서, 뻗치기는 매번 기약이 없었다. 그래도 현장에서 아무런 이야기도 들려주지 못한 채 “철수할까요” 묻기를 선후배들도 나도 싫어했다. 비난을 무릅쓰고 며칠씩 진을 치는 사례도 있었다. 최근엔 최순실씨의 압구정 미승빌딩이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평창동 자택 주변에 기자들이 많았다. 들어서는 사람과 대화 나누긴 언감생심, 그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 한 조각이 귀했다. 정권이 거짓으로 부인해온 비선, 나는 알 권리였다 말하겠다.

그 모든 뻗치기의 현장 중에 가장 큰 기다림이 응집한 곳은 서울 광화문 광장이다. 연차가 높은 이도 낮은 이도, 대추차 한잔 건네받지 못해도, 단 하나의 의문으로 한파 속을 기어이 뻗치고 있다. 응답할 단 한 명의 외면 속에서 기약 없는 뻗치기는 해를 넘긴 지 오래다. 그가 집안에서 억울하다고 여러 번 강변했지만, 사실 확인이 다 됐다며 엉덩이 털고 철수하는 이가 없다. 끽해야 꽃 피는 봄까지다, 도망갈 수는 없을 거야…. 뻗치고 있는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했다.

글=이경원 사회부 기자 neosarim@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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