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형준] 트럼프, 오바마, 우리의 다음 대통령 기사의 사진
미국 민주주의 250년 역사에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새 대통령이 취임했는데 축하의 분위기는 썰렁하고, 수십만이 참여하는 저항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은 전통적으로 화합의 자리였다. 자유, 인권, 민주주의 등 미국이 추구해 왔던 헌법 가치와 글로벌 리더로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자긍심이 한껏 표출되는 자리였다. 피부색깔에 관계없이 미국인이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나가 되는 축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새 대통령의 지지율이 이미 40% 아래다. 반대 시위에서 한 여성이 외친 구호가 인상적이다. “트럼프가 미국이 아니다. 우리가 미국이다.” 미국을 하나로 묶는 전통을 자랑했던 취임식에서 미국은 정확히 둘로 갈렸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America First!)”을 외쳤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를 예측해 유명한 루비니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보호주의, 고립주의, 미국 우선주의는 경제적 군사적 재앙의 레시피일 뿐이다.”

탁월한 비즈니스 협상가였던 트럼프에게 미국 우선주의는 협상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메시지일 수 있다. 손해 보는 장사를 안 하는 미국의 새 대통령은 다자간 협상보다는 양자간 협상에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우월한 힘을 바탕으로 상대를 윽박질러 미국이 얻는 득이 진정한 미국의 이익이 될는지는 의문이다. 전투에서는 이기고 전쟁에서는 얼마든지 질 수 있다. 서로의 이익이 촘촘히 얽혀 있는 글로벌 시대에 미국의 이익은 세계 내에서의 주도적 역할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지난 100년 세계 우선주의가 곧 미국 우선주의가 되는 구조를 만든 나라는 다름 아닌 미국 자신이다.

트럼프는 선거에서 백인 중산층과 근로자의 표를 모으기 위해 미국 우선주의를 활용했다. 포퓰리스트로서의 면모다. 하지만 그의 심성과 감정이 더 걱정이다. 타자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여기고 살아온 그에게 세상은 ‘정글의 게임’에 불과하지 않을까. 여성, 유색인, 무슬림에 대한 그의 편견에는 이런 ‘배타의 심리’가 자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시대의 지성들이 그를 염려하는 이유다.

어쨌든 국민을 둘로 갈라놓고 출발하는 트럼프 정부는 험로를 예고한다. ‘초불확실성(hyper-uncertainty)’이 그의 상징이 되었다. 트럼프는 전제정의 대통령처럼 마음먹으면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차 있다. 하지만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미국에서 그가 의회의 협조와 여론의 뒷받침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말은 앞서는데 실천은 안 따르고, 분열과 갈등으로 거래비용은 크게 늘어날지 모른다.

이와 대조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물러나는 대통령으로는 역대급인 60% 지지율로 박수를 받고 떠났다. 그의 강점은 역시 소통 능력, 그리고 포용 능력이었다. 그의 소통은 겸손함과 경청에서 출발한다. 고별 연설에서 그는 “나는 여러분들로부터 매일 배웠고, 여러분들이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고 감사를 표한다. 또한 “진정한 개혁은 보통 사람들이 관여하고 함께할 때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트럼프와 오바마가 우리에게는 타산지석이다. 다음 대통령이 나라에 필요한 개혁을 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대통령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폭넓은 사회적 합의를 얻어 추진하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은 대부분 전자의 방법에 의존했다. 금융실명제같이 성공한 경우도 있었지만 힘으로 밀어붙인 정책들은 대부분 많은 후유증을 남기고 정권에는 독이 되었다. 김영삼(YS) 대통령의 노동개혁, 참여정부의 4대 입법, 이명박(MB) 대통령의 세종시 전환 정책 등은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좌초되었다.

더 다원화되고 더 민주화된 지금 대통령의 힘에 의존하는 개혁은 성공확률이 거의 없다. 개혁의 칼바람이 요란하더라도 환부를 도려내지 못한다. 오늘의 시대 상황에서는 소통과 공감, 타협을 통한 사회적 합의가 개혁의 가장 큰 추동력이다. 누가 되든 여소야대가 될 가능성이 높은 다음 정권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능력은 리더의 가장 중요한 미덕이다. 그 가장 큰 적은 선악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편 가르기 정치이고 권력을 독식하려는 패권 정치이다. 오바마의 말대로 성숙한 민주주의는 획일성을 거부한다. 대신 차이를 가로질러 어깨동무하는 연대(solidarity)를 선호한다. 이를 이루는 수단이 소통의 정치, 연합의 정치다. 이것 없이는 ‘개혁이라는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릴 뿐이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 전 국회 사무총장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