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현동] 연말정산과 다니엘 블레이크 기사의 사진
그는 목수였다. 심장병이 악화돼 일을 못한다. 질병수당을 신청했으나 기각 당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이라는 안내음성과 함께 수화기엔 기계음만 흘러나온다. 1시간48분 만에 가까스로 상담원과 전화연결에 성공한 그는 항의하지만 상담원은 꿈쩍도 안 한다. 주변의 도움으로 인터넷 서류 작성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지난해 말 국내 개봉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야기다.

영국의 허술한 사회보장제도와 관료주의를 고발하는 동시에 이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영화다. 다니엘의 말처럼 프리미어 축구경기보다 더 긴 시간이 흐른 뒤 연결된 전화도 문제지만 인터넷은 감히 넘을 수 없는 장벽이다. 실업수당이나 질병수당 신청을 오로지 인터넷으로 해야 하는데 늙은 다니엘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는 질병수당 신청 자체를 포기한다. 이의신청 심판을 앞두고 결국 죽었다.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1588로 시작하는 회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가 유사한 경험을 했을 터다. 십중팔구는 ‘지금은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이라는 기계음만 반복적으로 듣다가 끊게 된다. 심지어 상담원 연결은커녕 영업성 자동안내음성에 이어 ‘다시 듣기는 별표를 눌러주세요’까지 듣고는 포기한다. 여간한 인내심이 없고서야 고객센터 상담원 연결은 쉽지 않다.

매년 이맘때면 월급쟁이들은 소득공제신고서를 작성한다. ‘13월의 보너스’다. 세금을 많이 냈다면 환급을, 적게 냈다면 추가로 내야 한다. 대체로 더 낸 경우가 많아 돌려받는다. 문제는 복잡한 신고서 작성법. 예전에 비해 간소해진 것은 맞다. 하지만 여전히 난수표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사용자의 인터넷 활용 능력은 고려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거나 나이든 사람에겐 공인인증서 발급받고 인터넷으로 연말정산 서류를 작성하는 것은 만만찮은 숙제다.

국세청 대표전화 126번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죄송합니다. 지금은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입니다’라는 기계음만 반복적으로 들어야 했다. “남들 다 하는데 그것도 못하느냐”고 핀잔을 준다면 어쩔 수 없다. 말과 글은 간단명료해야 한다. 관급서류일수록 더 그렇다. 남들 다 하는 걸 못하는 심정도 헤아려 주고 배려하는 게 행정이고 좋은 사회가 아닐까. 우리 사회에도 ‘다니엘 블레이크’가 적지 않다.

박현동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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