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동 칼럼] 특검, 수사로 말하라 기사의 사진
“증거가 차고 넘친다. 영장 내용을 보면 기절할 수준이다.” 특검 주변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이외에 유사한 표현들도 더러 있다. 일종의 여론전이다. 여론전은 유혹적이며 때론 유효하기까지 하다. 순간적으로나마 국민의 환호를 받을 수도 있다. 구속영장 청구 등 매우 중요한 순간에 ‘특검 관계자’ 또는 ‘검찰 관계자’ 발언으로 언론에 알려졌는데, 나는 이 말이 수사팀에서 나왔을 리 없다고 믿는다. 여론전을 펼친다는 오해를 받을 발언을 할 만큼 순진하거나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케케묵은 이야기지만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것은 ‘검사는 수사로 말하고,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다. 바꿔 말하면 섣불리 선입견으로 단정하거나 결과에 앞서 불필요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검사나 판사가 말을 앞세우면 진실규명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최악의 경우 억울한 피의자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제기된 의혹을 뒷받침하는 진술과 증거를 찾아 범죄사실을 확정하고 단죄하는 것이 검사의 역할이라면 판사는 검찰이 기소한 수사 내용이 진실에 부합하는지, 법에 어긋나는지를 따져 유무죄를 확정하면 된다.

2006년 노무현정부 당시 “밀실에서 만들어진 검사의 수사기록을 던져버려라. 변호사들이 만든 서류는 대개 사람을 속이는 것”이라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에 법조계가 발칵 뒤집혔다. 발끈한 검사들과 변호사들이 대법원장의 사과와 사퇴를 요구했다. 발언의 진의는 명료하다. 이 대법원장은 모든 증거자료를 공판에 집중시켜 재판에서 형성된 심증만을 토대로 심판해야 확정판결 전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이 유지될 수 있고,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단 한 명의 억울한 범인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형사소송법의 기본 원칙에도 부합한다고 본 것이다.

10여 전 이야기를 꺼낸 것은 특검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수사적(修辭的) 표현들이 기본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우려에서다. 일각에서는 ‘정치스럽다’는 말까지 나온다. 정치 검찰의 끝이 어떠했는지는 잘 알 것이다. ‘기절할 수준’은 말이 아니라 수사를 통해 확보한 혐의사실을 영장에 적시하면 된다. 수사가 완벽하면 말이 필요 없다. 말은 정치인에게 맡겨도 충분하다. 굳이 말을 하고 싶었다면 차고 넘치는 범죄사실을 구체적으로 말했어야 했다. 특검은 얼마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국가경제에 미치는 상황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일반론으론 옳은 말이다. 그러나 구속영장 청구와 이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경제에 부정적이라고 해서 죄가 있는 자를 처벌하지 못하면 그건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죄가 있고 없느냐와 수사상 구속 필요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르면 된다. 정의는 지향하거나 지켜내야 할 가치이지만 구속 또는 불구속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수사에 무슨 말이 필요한가. 오히려 말, 특히 번지르르한 수사(修辭)는 신뢰를 무너뜨린다. 특검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대다수 국민도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분노를 느낀다. ‘이것도 나라냐’는 자조적 여론까지 비등한 상황이다. 이미 여론의 힘을 얻고 있는데 불필요한 말 때문에 오해를 받아서야 되겠는가. 특검이 여론전을 한다는 것은 특검이 정치를 한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릴 수 있다. 결론적으로 여론전은 자해행위로, 일부러라도 피해야 한다. 오로지 진실을 향해 단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곁눈질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권력이든, 미래권력이든 특검이 정치권력에 빌붙거나,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순간, 정치가 법을 지배하는 순간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박현동 논설위원 hd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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