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태원준] 영혼 없는 공무원 기사의 사진
웹툰을 가끔 보는데, 최근 우연히 클릭한 작품은 ‘정주행’을 하고 말았다. 연재만화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한달음에 보는 걸 네티즌은 이렇게 말한다. 중간쯤 이런 장면이 있었다. 주인공을 추격하던 악당무리 행동대장에게 두목의 전화가 걸려온다. “철수해라.” “네? 한 놈을 거의 잡았습니다. 저 놈만 잡으면 나머지도….” “언제부터 니들이 생각이란 걸 했지?” “지금 철수하겠습니다.”

만화의 조폭 대사와 똑같은 이야기가 전직 장관 입에서 나왔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3일 특검에 출두하며 “(블랙리스트 주도자들은 실무진에게) ‘생각하지 마라. 판단은 내가 한다.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식의 얘기를 공공연히 했다”고 말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관료사회를 대한 방식은 “니들이 왜 건방지게 생각을 하느냐”고 되묻는 조폭 두목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명박정부 인수위원회는 국정홍보처 업무보고를 받으며 노무현정부의 기자실 폐쇄 정책을 비판했다. 그러자 국정홍보처 고위 간부는 “우린 영혼이 없는 공무원들이다. 대통령 중심제에선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공무원이 스스로를 조폭 행동대장 수준으로 격하시킨 이 말은 널리 회자됐다.

이명박정부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2010년 국회에서 “중소기업 감세안을 반대하던 기재부가 왜 갑자기 찬성으로 돌아섰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래서 공무원을 혼이 없다고 하지 않느냐”고 답했다. 노무현정부의 영혼 없는 공무원을 질타했던 이명박정부도 그들에게 ‘생각’을 허락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세 정부의 공무원이 다 그랬으니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인 건 맞는 듯한데, 그렇다고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한 공무원들에게 유 전 장관 주장처럼 “철저한 면책”을 해줘야 할까.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국민을 위해 일하라고 채용했는데 국민에게 해로운 일을 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면죄부를 주면 아마 생각하기를 영원히 포기하지 않을까.

글=태원준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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