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조영태] 미국의 이민규제, 전망과 시사점 기사의 사진
이슬람권 7개 나라 국민들의 미국 입국을 제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전 세계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다. 비록 한시적이고 모든 이슬람권 국가를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며 이미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제외됐다고는 하지만 IS(이슬람국가) 관련 국가의 국적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입국을 거절한 것은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반인권적 연좌제임이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과 당사자 국가들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세계가 이렇게 비판하니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의 명령을 철회할까? 당연히 철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이는 대선 공약이었고, 대다수 백인 중산층 및 근로자들이 투표를 통해 그런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민과 관련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무엇이 될 것이며 그것이 우리나라에 주는 영향은 무엇일까.

먼저 이민과 관련한 다음 행보는 미국에 이미 들어와 있는 불법체류자들을 찾아내고 이들을 추방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그 대상이 처음에는 테러 관련성이라는 잣대에 따른 이슬람권 국가 출신이겠지만 곧 가장 큰 불법체류자 집단인 중국인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인, 그것도 백인 근로자 인구가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노동시장에서 백인 근로자들의 입지가 늘어나는 이주민들에 의해 매우 심각하게 위협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백인 근로자들의 노동시장을 위협하는 가장 큰 존재는 멕시코 혹은 중남미 국가로부터 이주해 온 히스패닉이다.

미국 인구센서스국에 따르면 2014년 노동시장에서 불법체류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5%를 넘었는데, 그중 약 80%가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 출신이었다. 당연히 백인 근로자들이 비자 발급을 제한하고 불법체류자인 경우 당장 추방하고 싶은 사람들은 히스패닉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미국에 사는 사람 5명 가운데 1명꼴이 된 히스패닉을 대상으로 무언가 제재 조치를 취하기는 부담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명분이 충분한 다른 희생양들이 필요한데, 그들이 바로 테러와 연관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슬람권 출신 불법체류자와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다고 지목되고 있는 중국으로부터 온 불법체류자다. 물론 히스패닉 불법체류자에 대한 제재도 형평성 문제로 아예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계와 중국인에 비해 그 잣대가 낮을 것임은 분명하다. 미국에서 제조업을 다시 키우고자 하는 백인 기업가들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으로 생산성 높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히스패닉 인구는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주와 관련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우리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관광, 친지 방문 혹은 사업을 위해 미국에 가기가 앞으로 힘들어질까. 혹은 어학연수, 조기유학, 또는 석박사 학위 과정에 진학하기 위해 유학비자를 받는 일이 어려워질까. 아마도 미국 입국 시 몇 가지 질문을 더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국민의 미국행에는 그리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물론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우리 동포 가운데 불법체류자 신분인 경우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받을 것임은 분명하다. 중국인 불법체류자들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합법적인 체류 지위를 지니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동포들은 그리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높여 놓은 미국으로의 이주 장벽이 전 세계 이주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히스패닉을 대상으로 직접적인 이민 제재 조치를 취하지는 않겠지만 이들의 미국 이주가 앞으로 어려워질 것은 자명하다. 지난해 영국은 이미 브렉시트(Brexit)를 통해 자국으로의 이주 장벽을 높여 놓았다. 올해 미국이 그 장벽을 높였다. 비록 캐나다 등이 이주민을 더 수용하겠다고 말했지만 국제 이주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 다양한 이유로 이주는 멈출 수 없다.

큰 이주 대상 국가 두 곳의 문이 닫힌다는 것은 이주민들이 다른 곳을 찾아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가 그 대상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만일 추방된 중국인이나 히스패닉들이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우리는 어떠한 대응을 할 것인가. 정부와 학계는 트럼프의 불합리한 행보에 비판만 내놓을 게 아니라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점검하고 필요한 선제적 대응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