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경환 특파원의 차이나스토리] “나도 가짜인가봐”… ‘짝퉁천국’ 中 신종 자조놀이 기사의 사진
중국 인터넷에서 최근 유행하고 있는 만화 게시물. 왼쪽부터 ‘내가 다니는 대학이 가짜 대학일지도 모른다’ ‘내가 마신 술이 가짜 술일지도 모른다’ ‘내 뇌가 가짜일지 모른다’ ‘내가 가짜 사람일지도 모른다’라고 쓰여있다. 바이두 캡처
“아빠 올해 춘제(春節·설) 때 집에 못 가요.”

“잘됐다. 엄마랑 일본 여행가기로 했다. 너나 잘 챙겨라.”

“그런 말씀 안 하셨잖아요. 그럼 저는요.”

올 춘제를 전후해 중국 SNS에서 번지고 있는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입니다. 아빠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자녀는 그동안 아빠로 알고 있었던 사람은 실은 ‘가짜 아빠였을지 모른다’고 푸념합니다.

중국에서 2017년 첫 유행어인 ‘가짜일지 모른다’는 말이 번지고 있습니다. 유머 코드를 기본으로 무한한 확장성을 보여줍니다. 쥐꼬리만 한 보너스에는 “아마 가짜 보너스를 받았을지도 몰라요”라고 의심을 하고, 말없이 떠나버린 남자친구를 향해서는 “아마 가짜 남자친구를 사귀었을지도 몰라요”라며 자조합니다. 춘제 연휴 기간 텅 빈 도시를 보면서 “가짜 도시에 살고 있는지 몰라요”라고 너스레를 떨고, 눈 구경하기 힘든 남부 지방의 눈 소식에는 “가짜 겨울을 보게 된 것 아니냐”며 의아해합니다. 술에 취해 막말을 일삼는 자식을 향해서는 “내가 가짜 아들을 낳았다”고 한탄하기도 합니다.

올해 중국을 강타하고 있는 유행어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신화통신은 한 비디오 게임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을 유력설로 제기합니다. 게임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CS:GO)’팀 선수들이 실력 발휘가 잘 안 될 때 “가짜 술을 마셨는지도 모른다” “가짜 술이 사람 잡네요”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여기서 기원했다는 겁니다.

‘가짜일지 모른다’는 유행어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중국 대학가 기말고사 기간입니다. 성적에 불만을 가진 학생이 “전 아마 가짜 책을 공부했을지 몰라요” “전 아마 가짜 시험지를 받았을지도 몰라요”라는 현실 부정적 글과 이모티콘을 만들어 온라인에 올렸다고 합니다. 이후 중국의 SNS인 웨이신과 웨이보를 통해 급속히 번졌습니다. ‘가짜일지 모른다’는 말은 이제 자신도 부정하는 ‘저도 가짜일지 몰라요’라는 말로 진화했습니다.

유행어는 사회상을 반영합니다. 지난해 중국을 휩쓴 대표적 유행어가 바로 ‘소목표(小目標)’입니다. 중국 최고 부자인 왕젠린 완다그룹 회장이 TV에 출연해 부자가 되고 싶다는 학생에게 “먼저 1억 위안(약 170억원)을 벌겠다는 작은 목표(小目標)를 세워 기한 내에 달성한 후 다음 목표를 세워 차근차근 이뤄가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서민들은 평생 벌기 어려운 1억 위안을 ‘소목표’라고 한 말에 공분했습니다.

올해의 유행어는 중국의 ‘짝퉁문화’와 그에 대한 불신을 담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 네티즌은 산시성 시안을 여행할 때 가짜 병마용을 봤다고 폭로했습니다. 이후 네티즌들은 “저도 아마 가짜 병마용을 봤을지 몰라요”라는 댓글을 달았고 이 말을 유행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번 춘제 연휴 때는 기차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로 어렵다 보니 가짜 기차표가 기승을 부렸고 심지어 가짜 철도 직원증으로 무임승차하다가 적발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제 이 유행어는 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새로운 문화로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락가락하는 스모그 예보에 대해선 여지없이 “가짜 일기예보를 봤을지 몰라요”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자칫 스스로는 돌아보지 않고 남 탓만 하는 문화가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한 대학교수는 “가짜 시험지를 받았다고 하기 전에 시험 준비를 제대로 했는지 반성하는 게 먼저”라고 말합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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