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반기문의 말 기사의 사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정확한 예지력을 뽐내는 정치인들이 속출했다. 올 들어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 이재명 성남시장,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등 현역 중량급 정치인부터 정두언·정청래·최재성 등 전 의원 등이 불출마를 예상했다. 유인태·유시민 전 의원은 이미 지난해 반 전 총장이 출마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의 반상낙하(半上落下·반쯤 올라가다 아래로 떨어짐) 원인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은 다양하다. 나는 그의 말(言)이 결격사유의 하나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외교관과 정치인 모두 말을 업으로 삼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직업 외교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에게 말은 본인의 정체성을 확인시키는 공고한 수단이다. 귀국 후 20여일 동안 반 전 총장의 말은 자주 위태위태했다. 기자들에게 비속어를 쓰기도 했고, “돈이 없어 정당에 들어가야겠다” “촛불 민심이 변질된 것 같다” “국민들을 각성시키겠다”는 등 시대정신과 조응하지 못하는 발언으로 구설을 자초했다. 사소한 말실수가 정치인에게는 큰 설화가 된다.

퇴장의 언사도 실망스러웠다. ‘나의 부족’이 아니라 ‘주변의 잘못’을 탓했다. 본인의 순수한 충정을 음해와 구태, 이기주의로 가득찬 대한민국 정치 환경이 수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닮은꼴로 비유되는 고건 전 총리는 “저의 역량이 부족함을 통감한다”며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달 말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며 물러났다. 반 전 총장은 정치판의 폐습을 나무라기 전에 낯선 정치 환경에 대한 학습 부족을 자탄했었어야 했다. 국민들은 그가 구습의 정치지형을 바꿀 것으로 기대하며 환호했다. 현실을 불평하고 나무라라고 박수친 것은 아니다.

정치인의 말은 삶의 궤적이 반영된 것이자 정치 철학을 가늠케 하는 방편이다. 물러날 바에야 스스로를 성찰하고 국민을 다독이는 의연한 모습을 보였더라면 더 좋았겠다.

글=정진영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