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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훈 “해방 후 70년, ‘갑질의 역사’ 그대로라 비애감 느껴”

장편 ‘공터에서’ 출간 기자간담회

작가 김훈 “해방 후 70년, ‘갑질의 역사’ 그대로라 비애감 느껴” 기사의 사진
소설가 김훈이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장편 ‘공터에서’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이 소설을 쓰면서 가진 자의 ‘갑질’이야말로 한국의 유구한 전통이란 걸 새삼 느꼈습니다.”

밀리언셀러 작가 김훈(69)이 다시 전매특허인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흑산’(2011) 이후 6년 만이다.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신작 장편 ‘공터에서’(해냄 출판사) 출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소설은 일제 강점이 시작된 1910년에 태어나 해방과 함께 만주에서 돌아와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거치며 살았고, 가정에 정착하지 못한 채 평생을 방황하다 암으로 죽은 아버지 마동수, 베트남전쟁에 파병됐다가 그 악몽 때문에 돌아오지 않고 괌에 정착해 사업을 벌이는 1951년생 장남 마장세, 잡지사 기자로 일하는 1953년생 차남 마차세 등 한국 근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기신기신 살아온 마씨 집안 2대의 이야기다. 일견 작가의 가족사를 떠올리게 하는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김훈 작가의 부친은 경향신문 기자 출신의 소설가 김광주다.

작가도 “제 부친은 1910년에 태어났고 저는 국가가 수립된 1948년 태어났다. 둘 다 도망갈 수 없는 시대적 운명의 피해자였다. 위정자들의 갑질에 피해만 당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소설이 아버지 김광주를 모델로 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도 있는데, 나의 아버지와 그 시대 많은 아버지를 합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설 속에는 어떤 영웅도, 시대에 저항하는 혁명가도 나오지 않는다. 현실에서 점점 밀려나는 보통 사람들이다. 지나치게 패배주의적 시각이 아니냐는 비판을 의식한 탓일까. 그는 “희망을 말하다가 실패한 것 같다”며 “하지만 쓴 거보다 쓰지 않는 부분이 더 많다. 쓰지 못한 부분을 나무라지 마시고, 쓴 부분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어여삐 봐 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도 “제 등장인물은 이념이나 사상이 없는 사람들이다. 생활의 바탕 위에서 이념과 사상이 전개돼야 옳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는 조정래 황석영 작가처럼 한국사 전체를 관통하는 그런 소설은 쓰지 못한다. 대신 디테일을 통해 더 큰 것을 드러냄으로써 글쓰기의 난관을 돌파하자고 생각해 미술로 치면 크로키하듯 썼다”고 말했다.

광화문 집회에 나간 경험도 이야기했다. 촛불집회, 태극기집회 참가자 모두에서 함께 가자는 얘기를 들었지만 감기를 핑계로 가지 않았다. 대신 혼자 갔다는 그는 “아마도 참가자가 아니라 관찰자로 갔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때 이승만 대통령이 외국 나갈 때 동원돼 태극기를 흔들던 그 자리에서 지금 보수 단체의 탄핵 기각 태극기 집회가 벌어지는 걸 보고 해방 70년 한국사의 엔진이 이렇게 공회전하는 구나 비애감을 느꼈다”고 했다. 제목 ‘공터에서’는 끊임없이 가건물이 지어졌다 철거되는 그런 역사의 공회전을 상징한다. 하지만 끝내는 “위정자의 잘못으로 광장에서 함성이 일어나는 것은 굉장히 불행하지만 그 안에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며 희망을 말했다. 아버지 세대와 다른 김훈 세대가 보여준 진화일 것이다.

글=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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