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기업이 권력에 저항할 때 기사의 사진
처음엔 ‘쟤네도 별 수 없군’ 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세 운운하며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 하자 글로벌하다는 회사들이 일제히 꼬리를 내렸다. GM, 포드, 월마트 같은 거대기업이 협박성 트윗에 놀라 발표한 미국 투자액은 82조원이 넘는다. 권력이 팔을 비틀면 기다렸다는 듯 그 입맛에 맞추는 기업의 모습, 낯설지 않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기업은 그냥 기업일 뿐이구나 싶었다.

트럼프는 지난달 27일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슬람권 7개국 국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규정해 입국을 제한하는 조치였고, 이는 저항을 불렀다. 워싱턴을 비롯해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졌는데, 촛불집회를 경험한 입장에선 그리 새로워 보일 게 없었다. 행정명령의 효력을 중지시킨 판사도 법에 따라 판단했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일을 한 것이다. 눈에 띈 것은 기업의 저항이었다.

구글은 즉각 성명을 내고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비판했다.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직접 반대시위에 참가했고, 이민자 후원단체를 위해 400만 달러 기금을 조성키로 했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은 “잘못된 정책에 동조하지도 침묵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미국을 비롯한 세계 75개국에서 난민 1만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에어비앤비는 행정명령에 가로막혀 미국에 오지 못하는 난민들에게 무료로 숙소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트럼프에게 잘 보이려고 멕시코공장 신설 계획을 취소했던 포드는 180도 돌아섰다. 윌리엄 포드 회장과 마크 필즈 CEO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포드의 핵심 가치이며, 이 가치에 반하는 정책을 지지할 수 없다”는 공동성명을 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트위터, 넷플릭스 등 IT 기업 97곳은 행정명령 무효화 소송이 벌어지는 샌프란시스코 연방항소법원에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어떤 기업이 반대 입장을 밝혔고 어떤 기업이 침묵하는지 뉴욕타임스가 산업별로 정리해 보도할 만큼 많은 기업이 목소리를 냈다. 나이키 코카콜라 골드만삭스 씨티뱅크 같은 익숙한 이름이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이들이 나선 것은 이민 제한이 기업의 이익을 훼손하기 때문일 테다. 이민 인력이 많은 실리콘밸리가 가장 세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익이 훼손됐다 해서 권력에 맞서는 저항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포드가 멕시코공장을 포기할 정도로 권력은 기업에 무서운 존재다. 포드 경영진이 비판성명을 냈다는 건 그런 권력에도 양보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에 맞선 많은 기업은 ‘가치와 신념’을 이유로 들었다. 그 가치와 신념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기업들이 가치와 신념을 이유로 권력에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이제 막 출범한 정권에도 반기를 들 수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클린턴정부 재무장관, 오바마정부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을 지낸 래리 서머스는 요즘 강연과 인터뷰를 통해 “기업인이여 저항하라”고 외치고 다닌다. “기업의 수명은 정권보다 길다. 기업인은 권력자보다 장기적인 시야를 가졌다. 정권의 방향이 궁극적으로 사회에 이로운지 해로운지는 기업인이 먼저 안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면 트럼프정부에 저항해야 한다.”

우리 대기업은 박근혜정권의 부당한 요구에 단 한 곳도 저항하지 못했다. 권력을 대하는 모습이 박정희 시절과 달라지지 않았다. 대선주자들은 재벌개혁을 말하고 있다. 경제정의를 위한 개혁과 함께 권력에 약점을 잡히지 않는, 그래서 권력이 부당하면 저항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개혁이 필요해 보인다. 기업인에게 목소리를 찾아주는 일이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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