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현동] 구제역, 소는 억울하다 기사의 사진
인간과 가장 친밀한, 그러면서도 충직한 동물을 꼽으라면 소를 뺄 수 없다. 주인을 위해 죽도록 일하다가 죽어서 고기와 가죽마저 인간에게 바친다. 개 역시 친밀하고 충성스럽지만 소 만큼 우직하지 않다. 이뿐 아니다. 소는 시골 출신들의 교육 밑천이다. ‘소 팔고, 논 팔고’ 대학 들어온 친구들이 많았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아버지 세대는 소가 여물을 먹지 않으면 함께 끼니를 거를 정도로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인간만이 슬픔을 느끼고 눈물을 흘린다고 하지만 소도 감정을 지녔다고 한다. 키우던 소를 팔려면 외양간에서 끌려 나오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도살장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소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노부부와 소의 사랑을 다룬 ‘워낭소리’는 가슴 짠하게 울렸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이라는 영화도 그렇다. 소는 그냥 동물이 아니라 우리의 애환이자 삶, 동반자였다.

말 못 하는 소가 종종 시위에 등장한다. 김영란법에 반발한 농민시위에 차출됐고, 촛불시위에도 동원됐다. 소가 김영란법을 알 턱이 없고, 정치적 견해를 가졌을 리 없을 터인데 이 무슨 낭패인가. ‘동물학대’ 논란이 제기된 건 당연하다. 실제로 소는 스트레스에 매우 약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소는 소리에 매우 민감하고 작은 소음에도 고통받을 수 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또 빛에 예민하고 움직이는 물체에 유달리 겁을 먹는다고 한다. 네온사인과 촛불, 카메라 플래시, 그리고 함성 가득한 광화문광장에서 소가 느꼈을 공포는 짐작되고도 남는다.

2010년 재앙을 초래했던 구제역이 또 발생했다. 축산농들이 의무화된 백신을 제대로 접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2010년엔 구제역 발생을 쉬쉬하고 심지어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의 주범이 철새라면 구제역 확산의 주범은 인간이다. 철새는 모르고 그랬다지만 인간은 알고도 그랬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처분 방조죄’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인간 이기심 탓이다. 철새보다 더 나쁘다. 소는 억울하다. 글=박현동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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