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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리고 근신·기도하라”… 말씀 벗어난 교회에 고함

스스로 판단하라/쇠얀 키에르케고어 지음/이창우 옮김/샘솟는기쁨

“정신 차리고 근신·기도하라”… 말씀 벗어난 교회에 고함 기사의 사진
덴마크 코펜하겐 왕립도서관 정원에 있는 쇠얀 키에르케고어 동상. 의자에 앉아 뭔가를 쓰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평생 저술을 통해 불의한 시대와 교회에 저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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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을 무심코 읽다간 소스라칠 수 있다. “설교자가 주일에 열변을 토할 때 사람들은 그런 선포를 설교자의 직업과 생계라고 설명하고, 많은 성직자의 삶이 실제 상황과 다르지 않으므로, 설교자의 열변은 월요일의 실제 상황을 바꾸지 못한다.…본받음은 폐지되었다.”(168쪽) 한국교회에 회의적인 한 성도가 어젯밤에 휘갈겼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문장이 많다.

하지만 그는 19세기 중반을 살았던 실존주의(實存主義) 철학의 창시자 쇠얀 키에르케고어(1813∼1855)다. 실존주의는 합리적 관념론에 반대해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한 사상이다. ‘스스로 판단하라’(For Self-Examination, 샘솟는기쁨)는 기독교적 실존주의자였던 키에르케고어의 강화집(講話集)이다. 30권 안팎인 키에르케고어의 주요 저작이 대부분 번역됐지만 이 책은 국내 첫 번역이라고 한다.

널리 알려진 그의 책 ‘죽음에 이르는 병’이 사상서라면 이 책은 설교문에 가깝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부유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신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목사가 되진 않았다. 연인 레기네 올센과 약혼하지만 결별했고 독신으로 살았다. 저술 활동을 통해 비인간적인 시대와 타락해 가는 교회를 상대로 ‘심미적 전투’를 벌이는 데 평생을 바쳤다.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키에르케고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지만 동시에 생명으로 전환되는 계기라고 한다. 인간은 동물 이상이기 때문에 절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한한 창조주로부터 연원한 인간은 그와의 분리에서 불안을 느낀다. 불안의 해소를 위해 인간은 무한한 존재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 섬으로써 절망이라는 병의 치유를 받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행복이라고 했다.

‘스스로 판단하라’는 이런 사상을 토대로 당시 마르틴 루터를 따랐던 덴마크 국교회에 던진 고언이다. 1부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관한 변증’과 2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로 구성돼 있다.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에 대한 변증인 1부는 술에서 깨어날 것을 촉구한다. 여기에서 술이란 세속적인 모든 것을 가리킨다. 간음 도둑질 불경건 등. 저자가 말하는 술 깸이란 “하나님 앞에서 무(無)의 존재로서 정신 차리기”(30쪽)이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마 6:24)의 강해 성격인 2부는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생애를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문장을 수차례 반복한다. 우리의 자각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중세는 선한 행위를 매개로 장사를 했다.…루터는 이를 영적 무감각이라고 선포했다.…그러나 다음세대는 게을러지기 시작했다.…루터의 열정을 교리로 바꾸어 버렸다.”(175∼176쪽)

종교개혁 이후 변질된 교회에 대한 고발은 신랄하다. 당시 교회가 그를 배척했음은 물론이고 그는 언론을 통해 대중적 조롱도 당했다. 키에르케고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승구 합동신학대학원대 교수는 그의 글에 대해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씀에서 벗어난 교회를 바로세우기 위한 외침”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성직자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잡지 ‘순간’을 발행하던 중 숨졌다. 재산은 잡지 발행 등에 거의 다 썼다. 일부 귀중품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 전 약혼녀 올센 앞으로 남겼다.

그의 글은 난해한 편이다. 하고 싶은 말을 마구 던진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키에르케고어의 교회 비판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내가 쓴 글을 의도대로 읽고자 한다면 확신을 가진 채 문을 잠그고 홀로 읽으라”고 했다. 책을 읽다보면 그리스도교의 본질에서 벗어난 오늘날의 교회와 우리 삶이 부끄러워지고 만다. 하나님의 법정으로 소환되는 느낌이다.

함께 보기 좋은 책들

쇠얀 키에르케고어를 더 알기 위해 읽어볼만한 책을 소개한다. 입문서로는 ‘쇠얀 키에르케고어-불안과 확신 사이에서’(비아)가 있다.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은 ‘죽음에 이르는 병’(표지·한길사)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사랑의 역사’ ‘불안의 개념’ ‘그리스도교의 훈련’ 등을 수록한 키에르케고어 선집(다산글방)도 나와 있다. 2011년 창립된 한국키에르케고어학회(회장 박창균)도 활발하게 연구 자료를 내놓고 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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