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황주리의 나의 기쁜 도시] 오슬로, 백야의 기억 기사의 사진
황주리 그림
나의 유럽 여행의 기억은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머물러 있다. 2000년대를 기점으로 내 여행의 취향은 좀 더 거칠고 덜 개발된 곳으로 바뀌었고, 유럽은 비현실적인 첫사랑처럼 아스라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중에서도 1996년에 갔던 북유럽 여행은 무균질의 깨끗한 세상의 기억이었다.

나는 어릴 적에 읽은 북유럽의 동화들이 이후로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상상만 해도 신비롭지 않은가? 내 북유럽 여행의 기억은 북위 71도 10분 21초, 노르웨이 가장 북쪽, 유럽 최북단의 땅 노르드 곶, 세상의 맨 끝에 관한 기억으로 시작된다.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고 겨울에는 해가 뜨지 않는 땅, 전설의 고향 같은 안개 속을 헤치고 대관령 길같이 구불구불한 산등성이를 숨죽여 올라가는 버스에 실려 꿈인 듯 생시인 듯 달리다보면 세상의 끝에 도달한다. 낭만적인 달 표면 같은 고원지대가 펼쳐지던 풍경, 거대한 빙하가 만들어낸 피요르드와 오로라의 비현실적인 풍경들, 노르웨이의 산 풍경도 잊을 수 없다. 호수에 투영되어 어느 게 실물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적막하고 아름다운 노르웨이의 산 풍경을 보고 나서 문득 시리게 아름다운 한국의 강산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던 건 왜일까?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기억은 어릴 때 읽은 북유럽 동화 속처럼 외로웠다. 우리에게 밤이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 그때 알았다. 여름 밤 별도 달도 없는 하얀 백야 아래 차가운 맥주를 마셨던 생각도 떠오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는 그렇게 너무 다른 땅들이 존재하듯 사람의 마음의 땅도 그럴 것이다. 나와는 너무 달라서 이해할 수도 적응할 수도 없는 타인의 마음의 영토, 그 낯설음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지도 않으려던 그 시절의 자화상도 떠오른다. ‘북쪽으로 가는 길’이라는 어원을 지닌 나라 노르웨이의 울창한 숲들을 지나며 나 역시 하루키의 소설을, 비틀스의 노래를 떠올렸다. “나는 한때 한 여자를 알았지. 아니 그녀가 한때 나를 알았다고 해야 할지 몰라. 그녀는 내게 자신의 방을 보여주면서 말했네. 좋지 않아요? 라고. ―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홀로였고, 새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네. 나는 불을 지폈지. 좋지 않아? 노르웨이의 숲에서.” 소설 속 주인공은 독일 함부르크 공항 기내에서 오래전에 죽은 첫사랑이 좋아하던 비틀스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을 우연히 듣게 된다. 성장소설 ‘노르웨이의 숲’은 노르웨이와는 사실 별 상관 없는, 화살처럼 가버리는 한 번뿐인 젊음을 위로하는 상징적인 숲이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의 ‘칼 요한스’ 거리를 걸으며 미술관에 들어가 ‘뭉크’의 그 유명한 그림 ‘절규’를 보았던 기억도 아련하다. 그림 뒤 배경은 북극광 오로라를 보고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프라하 성을 보고나면 카프카의 성이 어떻게 써졌는지 고개가 끄덕여지듯이. 전차를 타고 창밖으로 느껴지던 평화와 여유도, 그렇지 못했던 내 마음도 동시에 떠오른다.

무엇보다도 부러웠던 건 이십세기 초 노르웨이의의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의 조각공원이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다녀와서 새로울 것도 없는 명소로 알려진 지 오래지만, 그때만 해도 내게는 깜짝 놀랄 예술의 별천지였다. 212점의 작품을 작가 기증으로 이루어진 비겔란 조각공원에서 나는 말을 잃고 하염없이 조각들 사이를 헤맸다. 탄생과 죽음, 사랑과 미움과 고통과 기쁨과 슬픔의 인간의 모든 감정과 생로병사의 의미를 조각으로 만들어놓은 대 서사시를 오래도록 읽었다. 그 조각 작품들은 1900년대 초부터 1920, 30년대까지의 오래된 작품들이었으나 세월이 흘러도 결코 낡지 않을 것 같은 영원한 서정성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오슬로의 평화로운 시민들과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믿음직한 사회보장제도와 영재보다는 장애우나 가난한 이들에게 혜택이 많다는 합리적인 나라 노르웨이가 부러웠다.

“인생은 비스킷 통이다. 그 안에는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들어 있다. 먼저 좋아하는 것을 먹으면 그다음엔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된다.”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에서- 좀 다른 비유지만 내 삶의 여행 비스킷 통 속에서 나는 맛있는 것부터 먹어치웠는지 모른다. 이를테면 유럽 여행을 가장 먼저 한 셈이다. 하지만 맛있는 걸 먼저 먹어도 우리 생의 비스킷 통 속엔 맛없는 것만 남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취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비스킷은 어쩌면 더 맛있을 것이다. 오슬로 거리에 서 있던, 지금이라면 청춘의 나이 마흔 살부터 너무 멀리 왔다. 앞으로의 이십년도 눈 깜짝할 새 흘러갈 것이다. 다시 그곳에 간다면 외로울 틈도 없을 것 같다. 매순간을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주워 담을 것만 같다.

황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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