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규의 문화공방] <91> 조 새트리아니 기사의 사진
조 새트리아니의 한국 공연 모습
기타리스트 조 새트리아니(61) 공연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칼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빛처럼 소환되는 추억은 추위도 간섭하지 못했다. 함께 간 친구는 한파 속에서도 수십년 전의 일을 어제처럼 입에 올렸다. 신기했다. 우리는 만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지난 10일 서울 광장동 예스24라이브홀에서 그의 첫 내한공연이 열렸다. 오프닝 곡 ‘쇼크웨이브 슈퍼노바(Shockwave Supernova)’가 관객을 밀어붙인다. 지난해 발표한 15집 앨범 수록곡이다. 정교하고 속도감 있는 연주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호흡을 부른다. 공연장 여기저기에서 낯익은 기타리스트들이 눈에 띈다.

“조 형님, 살아있네 살아있어!” 팬들의 환호는 공연장의 열기를 지폈다. 1986년 데뷔 앨범을 발표한 이래 30여년간 그의 음악적 역사는 장대했다. 세계적인 기타 장인으로서의 역할은 부정할 수 없을 만큼 혁혁했다. 그를 따르고 영향을 받은 음악적 추종자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대표적으로 메탈리카의 커크 해밋, 제너레이션 액스의 스티브 바이 등이 그에게 기타를 사사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음악성과 대중성을 넘나들었던 그는 그래미상에도 수차례 후보로 오르는 단골 아티스트였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120여분간 20여곡을 온몸으로 불살랐다.

연주만으로 월드투어 콘서트를 한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다. 아쉽게도 국내 기타 연주 앨범이 발표되는 일은 이제 찾기 힘들다. 90년대 중후반 이현석, 최일민 같은 국내 기타리스트 앨범이 발표되면 1만장 이상 판매되던 시기였다. 대중음악이 오직 인기와 돈으로만 귀결되는 작금의 쏠림은 씁쓸하고 불안하다. 조 새트리아니의 기타 연주 ‘프렌즈(Friends)’가 관객의 손을 붙든다.

눈물이 핑 돈다. 90년대 중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좌절을 함께해준 울림이었다. 절실했던 각자의 사연이 공연장에 소환된다. 그의 무대는 깊고 넓게 포효했다.

강태규(대중문화평론가·강동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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