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공간-가평 가락재영성원] 하나님 공간에서 에덴의 자유를 나누다

가평 가락재영성원 정광일 원장 “자연 속에서 영적 재충전”

[교회와 공간-가평 가락재영성원] 하나님 공간에서 에덴의 자유를 나누다 기사의 사진
겨울이 내려앉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위곡리 가락재영성원. 십자가가 있는 건물은 ‘코이노니아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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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지성화 되면 될 수록 물질은 점점 공간화 된다. 철학적 의미의 공간은 시간과 함께 세계를 성립시키는 기본형식이다. 피조물 인간은 창조주의 공간과 시간 안에 산다. 그 시·공간 안에서 인간은 인간다운 삶을 원한다. 한데 정작 인간들은 삭막하고 복잡한 도시로만 몰린다. 크리스천은 영생과 행복을 추구한다. 따라서 복음을 받은 자의 이상세계는 도시공간이 아니다. 정원이다. 최초의 낙원이 에덴동산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도시는 곧 헤어질 사람과 만나는 곳이고, 나를 감추는 곳이다. 마음껏 자신을 과시해도 되고 악을 저질러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군중 속에 숨으면 그 뿐이다. 도시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정광일(65) 목사는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장신대 대학원에서 신학 공부를 했다. 한남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에서 유학했다. 이 무렵 떼제와 라브리공동체를 순례하며 영성훈련을 받았다.

1990년 그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위곡리 한 마을에 정착했다. 세 자녀와 함께 정원을 ‘가꾸기’로 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위탁받아 관리하며 자연 속의 나를 찾고자 하는 이들을 돕기로 했다. 가락재영성원은 그렇게 시작됐다.

신학과 철학을 넘나들며 ‘현대인과 신앙’ ‘한국사회의 윤리적 위기와 기독교’ ‘기독교 유토피아의 가능성’ 등의 저술활동에도 열심인 정광일 목사를 지난 8일 만났다.

-옛 경춘가도를 타고 왔는데 쭉쭉 뻗은 도로가 아닌 것이 되레 정겹습니다.

“제가 처음 들어왔을 때 초가집도 있었어요. 초등학교도 없어지기 직전이었고요. 제 세 자녀가 다니면서 폐교를 면했습니다. 지금은 인구수가 늘고 있어요.”

-도시의 삶에 익숙한 저로선 오지입니다. 무엇보다 심심할 것 같습니다.

“많든 적든 산골을 찾아옵니다. 심심하게 사는데 심심하고자 오네요.”

-한 유명 가수 매니저가 암 선고를 받고 이곳에 머문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전도사 시절 청년부에서 신앙생활 열심히 하던 분입니다. 암 말기라 충격이 크셨죠. 선고 받은 직후 ‘목사님 생각이 가장 많이 났다’며 어려운 걸음 하셨어요. 기도하고 자연과 호흡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작 영성을 얘기하면서 이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합니다. 잡히면서 잡히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나무와 집으로 설명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무가 시간의 영성이라면, 집은 공간의 영성입니다. 나무는 저 자신을 시간으로 묻게 합니다. 나이테는 숨을 쉬는 생명체란 얘기죠. 나무의 뿌리가 중요한 까닭도 수명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집은 우리로 공간을 묻게 합니다. 집의 크기와 넓이는 집 자체보다 그 안의 공간 구성을 말하죠. 사람의 속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안의 내면성, 즉 몸집 크기가 아니라 마음과 인격 됨됨이의 공간 구성을 말하죠. 따라서 영성은 하나님에 뿌리를 둔 삶의 지향성을 말합니다. ‘영원히 사모하는 마음’(전 3:11)을 가진 존재가 사람이라는 겁니다.”

-가락재의 나무와 집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말씀 안에서 사랑 기쁨 자유를 원합니다. 사랑과 기쁨이 누구에게나 필수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면 자유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라고 했어요. 주의 영이 주어진 곳이 에덴, 곧 자연이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서도 파장이 일고 그 파장이 우리 육신에 들어와요. 저는 하나님의 공간에서 에덴의 자유를 택한 거죠.”

-성스러움으로 포장된 유행상품이 되버릴 수도 있는데요.

“32살 때 목사 안수를 준비하며 주님이 허락하신다면 이렇게 살아보리라 다짐하며 성경책 앞장에 쓴 게 있어요. ‘가난한 이들과 함께’ ‘영적 교감’ ‘작은 예수 마을’ ‘예수전 쓰기’. 가락재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리 살았습니다.”

-4개동으로 구성된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인데 많은 순례객이 오네요. 성서적 의미를 담은 퀼트, 참나무 느티나무 적송 등이 평안을 가져다 줍니다.

“쉼과 나눔의 공간입니다. 가정모임과 부부세미나, 신학심포지엄 등이 열리고 있긴 한데, 쉼을 깨뜨린다면 후순위가 됩니다. 자유를 깨닫고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적 재충전 공간입니다.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가 프로그램이랄까. 쉬어야 다시 서지요. 한국교회가 그간 공간 확보한답시고 쉼을 빼앗은 건 사실이죠.”

-가장 기억나는 분들은 누구입니까.

“서울의 제법 큰 교회에서 온 목사초빙위원회 분들입니다. 20여명 가까이 됐는데 참 경건하더군요. 무엇보다 청년 등도 참여시켜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는 게 참 보기 좋았습니다. 지도자는 믿는 것과 사는 것이 일치하는 자여야 합니다. 그런 분을 세우시더군요.”

-가락재의 새 소리, 바람 소리, 물 소리가 리더십을 세우는 데 영향을 미쳤겠군요.

“하나님 뿌리의 소리니까 그렇겠지요.”

-한국 사회와 교회가 요동치고 있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득할 때가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부활의 신앙입니다. 이를 위해선 믿는 이들이 공동체적 뿌리를 공유해야 합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고, 내 피가 내 피가 아닌 예수의 몸과 피라고 고백해야죠. 각자의 자리에서 예수의 심장으로 살며 예수의 흔적을 남겨야죠. 미숙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영성을 외쳤지만, 자기를 합리화하는 데 그쳤어요. 1970∼80년대 교회가 급성장했지만, 물질가치만 키운 것도 이에 해당합니다. 이제 자기 공간에서 ‘예수 심장의 영성’이라는 위치에너지를 찾아야 합니다. 위치에너지를 찾지 못한 분들이 ‘젊은이를 능가하는 노익장’이라며 과시합니다. 사회와 교회 곳곳에서요. 각자의 삶의 공간에서 겸손한 위치에너지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영성 실천을 위한 제일 조건이 뭘까요.

“떼제공동체는 하루 세 번 예배 말고는 특별한 규칙이 없습니다. 다만 딱 하나 수백 수천명의 순례자가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공간 안에서의 침묵이었습니다. ‘오직 침묵.’ 침묵은 자신의 자리를 낮추는 일입니다.”

가평=글·사진 전정희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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