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한민수] 기울어진 운동장 기사의 사진
정치권에 ‘기울어진 운동장론’이라는 게 있다. 주로 진보진영이 믿어왔는데 지역·세대별 유권자 분포 등 한국의 정치지형이 보수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서전 ‘운명이다’에 기술하면서 널리 퍼지게 됐다. “대한민국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경기와 비슷하다. 보수 세력은 위쪽에, 진보 세력은 아래쪽에서 뛴다. 진보 세력은 죽을힘을 다해도 골을 넣기 힘들다. 보수 세력은 뻥 축구를 해도 쉽게 골을 넣는다.” 보수가 적당히 해도 정권을 차지할 수 있는 데 반해 진보는 무척 어렵다는 얘기다.

실제로 우리나라 보수정당의 근거지가 됐던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의 인구는 호남을 압도한다. 2007년과 2012년 대선에서도 한나라당 이명박,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이 지역의 지지를 토대로 당선됐다.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보수 성향이 짙은 60대 이상 유권자들의 영향력도 커졌다. 진보 내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통설로 굳어지게 된 계기다. 선거연령을 만 18세로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야당에서 꾸준히 제기된 데는 이런 이유도 포함돼 있다. 일부 진보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은 없다. 리더십 부재 등에 대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큰 호응을 얻어내진 못했다.

그런데 올해 조기대선 정국에서 정반대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등장했다. 진보진영의 대선 주자들이 지역·세대를 막론하고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데 비해 보수진영은 형편없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10일 발표한 2월 둘째주 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29%)와 안희정 충남지사(19%), 이재명 성남시장(8%),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7%),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1%)의 지지율을 합하면 64%에 달한다. 반면 보수 측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각각 11%, 3%에 불과하다. 정당 지지율도 민주당(40%)과 국민의당(12%)은 52%, 새누리당(13%)과 바른정당(7%)은 20%였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작은 수치 차이만 있을 뿐 기울어진 운동장의 위쪽을 진보, 아래쪽은 보수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치권에서는 이번 대선은 누가 나가더라도 야권 후보 간의 양자 대결구도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격세지감을 느꼈을 만하다. 역시 정치는 생물이고 민심도 이에 맞춰 변하는 것 같다.

글=한민수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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