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의심하라, 그리고 또 의심하라 기사의 사진
2012년 대선 때 사람들이 새누리당 후보 박근혜의 능력과 주변을 좀 더 의심했으면 당선됐을까. 그런 의심은 묻지마 지지층으로 하여금 좀 더 합리적 사고를 하게끔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그가 경제민주화 추진 능력이나 의지를 갖고 있었는지 의심하는 건 불가능했나. 그럼 민주당 후보 문재인이 됐으면 나라가 나아졌을까. 다 지나간 일, 정말 부질없는 생각이긴 하다.

올 봄 대선 가능성이 작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선거 기간은 짧다. 그래서 신문이든 방송이든 인터넷이든 대중매체와 SNS의 영향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선전·선동급 치고 빠지는 전략이나 아니면 말고 식 주장, 가짜 공약에 아주 취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미국 대선에선 가짜 뉴스가 영향을 미쳤다. 메릴랜드주에서는 지난해 11월 한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가 ‘오하이오주 한 창고에서 힐러리 클린턴으로 표기된 수천만장의 투표용지가 발견됐다’는 제목의 가짜 기사를 인터넷에 내보냈다. 기사는 15분 만에 만들어졌다. 그럴듯하게 투표용지 묶음처럼 보이는 종이박스가 가득 찬 컨테이너 사진까지 올렸다. 트럼프 맹신자들에게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기사였다. 이 가짜 기사는 한 지방신문에 실렸고, 클릭 수가 600만번을 넘었다. 그는 광고 수입료로 2만2000달러를 챙겼다. 선거가 끝나고 난 뒤 뉴욕타임스 기자가 취재해 밝혀낸 얘기다. 가짜 기사를 작성한 계기는 트럼프가 오하이오주 선거운동에서 “만약 내가 지면 분명히 부정선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이었다. 맹신자들을 향한 명백한 선동이었다. 선거 내내 부정선거 논란은 이슈가 돼 버렸다. 극우 정치 사이트 등에서는 힐러리가 피자가게 뒷방에서 성매매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가짜 기사를 내보냈다. 진짜로 믿은 맹목적 추종자가 총을 들고 피자가게를 공격했다는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

지난해 말 영국 옥스퍼드사전 편찬위원회는 2016년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했다. 객관적 사실·진실은 부차화되고 신념이나 감정이 중요시되는 현상을 꼬집은 것이다. 트럼프가 당선된 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탈진실이 지배하는 시대로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대선 분위기는 물론 취임식 참석 인원 논란에서 보듯 진실도 바뀔 수 있다는 경고였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 탈진실의 시대는 비합리성이 결정과 판단을 좌우한다.

우리 선거는 진작부터 탈진실을 바탕으로 치러졌는지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 지역주의나 진영 논리, 맹목적 지지, 공약(空約) 등이 어우러진 선거는 합리성이 배제된 탈진실 선거의 전형 아닌가. 대통령 박근혜가 최순실로 이어지는 희대의 사건도 탈진실이다. 대통령이 공공성과 시스템을 배반하고 자신은 국가를 위한다는 오도된 신념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이번 선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의심하라. 의심하라. 그리고 또 의심하라.’ 의심 없는 확신, 의심을 거치지 않은 판단은 맹종을 낳는다. 맹종의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지는 지금 겪고 있는 그대로다. 의심만 갖게 되면 불신만 초래한다고? 부정과 냉소만 횡행한다고?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합리적 의심은 공론화를 촉발시킨다. 의심을 거친 믿음은 진리에 다가선다. 의심에 의심을 물리친 사실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이런 진리와 합리는 공감을 형성한다. 이게 곧 실체적 신뢰이고 현실적 힘이 된다. 선택할 권리를 가진 사람이 의심에 의심을 거쳐 합리적 판단력을 갖추게 되면 선택받을 자들은 얼렁뚱땅 넘어가거나, 미사여구로 치장하거나, 함부로 언동하지 못한다. 잊지 말자. 또 다시 슬픈 희극을 보지 않으려면.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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