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유예도 빈부격차] 졸업유예 ‘흙수저’, 미래도 ‘흙빛’인가 기사의 사진
지난해 8월 졸업한 유모(29)씨는 ‘위장 대학생 신분’이었던 졸업 전 두 학기를 생각하면 지금도 숨이 막힌다. 취업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학기당 40만원을 내고 졸업을 유예했지만 그에 따르는 압박감은 상당했다.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와 요양보호사인 어머니의 월 소득은 합쳐도 20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유씨는 생활비 명목으로 150만원을 대출받아 졸업유예 비용을 댔다. 부모님은 한 달에 40만원씩 들어가는 학원비를 마련해주셨다.

유씨는 유예했는데 다음 취업 시즌에 취업이 안 되면 그 이후 지출에 대해서는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다행히 유씨는 졸업 유예 1년 만에 대기업 영업직에 합격했지만 “만약 취업이 안 됐다면 취직을 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언론사 입사를 준비 중인 박모(27)씨는 큰 고민 없이 대학 졸업을 유예했다. 부모님도 “원하는 대로 하라”고 이해해주셨다. 박씨의 아버지는 사업을 하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로 상대적으로 집안 형편이 여유로운 편이다. 박씨는 다음달부터 언론사 입사를 위한 외부 강의를 들을 생각이다. 박씨는 “유예를 해도 부모님께 지원을 받는 상황이라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감이 있다”고 했다.

취업난에 많은 학생들이 졸업유예를 선택하지만 유예 이후 미래에 대해서는 부모 소득 수준에 따라 낙관과 비관이 극명하게 갈린다.

14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대학생 졸업유예 실태 및 지원 방안 연구’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에서 지난해 6월 현재 졸업유예 상태에 있는 1002명(서울 470명, 서울 외 532명)을 무작위로 조사한 결과 부모의 월평균 소득이 150만원 미만인 졸업유예자가 800만원 이상인 이들에 비해 긍정 미래관이 크게 낮았다. 이른바 ‘금수저’들은 유예기간 동안 스펙을 쌓아 더 나은 미래를 꿈꾸지만 ‘흙수저’는 미래를 비관적으로 인식한다는 분석이다.

부모의 월평균 소득이 150만원 미만인 졸업유예자의 긍정 미래관 항목은 평균 5.3개였다. 반면 소득 800만원 이상 졸업유예자의 긍정 미래관 항목은 7.0개로 눈에 띄게 높았다. 긍정 미래관은 ‘미래에 대해 희망적이고 의욕적인지’ ‘장래에 내가 원하는 일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등 9개 항목의 질문에 ‘예’라고 답한 개수를 뜻한다. 보고서는 “취업난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심리·정서적으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경제적으로 취약한 저소득층”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인식차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수저론’을 그대로 반영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한국의 기회구조가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고 판단하다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운동장 자체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흙수저’와 ‘금수저’ 유예자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 범위 자체가 다르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현 사회에서는 소득이 사람의 상상력까지도 지배한다”며 “예컨대 상상력에 영향을 주는 여행이나 독서 같은 경험들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졸업유예
졸업요건을 충족했지만 일정 기간 졸업을 미루는 것을 뜻한다. 졸업요건을 갖추고 졸업 시기만 늦추는 유형과 졸업논문 등을 의도적으로 제출하지 않고 미루는 유형이 있다. 졸업예정자들이 취직할 때까지 대학생 신분을 유지하려고 졸업유예제를 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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