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대통령이 로또는 아니다 기사의 사진
지난 대선 때 ‘대한초등학교 반장선거’란 유머가 인터넷에 돌았다. 김제동으로부터 반장 추천을 받은 안철수가 “제게 그런 능력과 자격이 있는지….” “반장이 목표는 아니고요. 저는 호출된 케이스랄까요” 대선 출마 여부에 뜸을 들이는 안철수씨를 풍자한 내용이었다.

청춘콘서트로 젊은층 마음을 사로잡은 그가 대선에 뛰어든다고 했을 때 안타까웠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해 부와 성공이 보장된다고 여겨지는 의사의 길을 내던지고 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뛰어든 천재, 교과서에도 소개되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줬던 그를 ‘영웅’으로 남겨뒀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2000년대 초반 IT업계를 취재하면서 봐 왔던 그의 순수함과 열정이 세속에 물들까 걱정도 됐다. 아니나 다를까 ‘세인트(saint·성인) 찰스’인 줄 알았는데 한 꺼풀 한 꺼풀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안철수 신드롬은 사라졌다. 국민의당 대선주자로 나선 지금도 그의 지지율은 10% 미만에 머물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그랬다. 충주에서 ‘영어신동’으로 통했던 그는 충주고 3학년 때 적십자사 주최 영어웅변대회에서 1등을 하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뒤 외교관 꿈을 키웠다. 힘들 때마다 케네디와 함께 찍은 사진을 꺼내보며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이들에겐 전설이다. 반기문 영어경시대회가 생기고 인터넷에는 ‘반기문 영어공부’가 회자됐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 오른 그가 굳이 진흙탕 정치판에 뛰어들었어야 했을까. 난세에 영웅에 목마른 시대가 그를 소환했지만 결과는 상처뿐이었다. 퇴임 후 대통령 출마 권유를 받았지만 인류에 봉사하는 길을 택하겠다며 의미 있는 활동을 펴고 있는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의 전철을 밟았더라면 어땠을까.

영웅이 그리운 시대다. 군중들은 일자리도 뚝딱 만들어주고 팍팍한 삶도 나아지게 해줄 초인을 기다린다. 그런 대중 심리에 부응해서든, 낡은 정치를 바꿔보겠다는 순진한 생각이든 존경받는 인물들이 대선에 뛰어들었다가 추락하는 모습은 안타깝다. 자기 분야에서 국가를 위해 봉사할 일이 많을 터인데 대통령이 로또도 아니고 굳이 나서는 것은 왜일까. 정치경험이 전무한 신문사 논설위원마저 나서는 판이니 구국의 충정보다 우후죽순 권력에 달려드는 불나방으로밖에 안 비쳐진다.

지금 한반도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암살, 미국 조야에서 나오는 선제타격론으로 일촉즉발 화약고다. 장기간 경기침체에 구제역까지 퍼지면서 국민들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산적한 현안들을 챙겨야 할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대선판을 기웃거리고 있다. 황교안 총리는 최순실 사태가 불거진 뒤 지난해 11월 김병준 책임총리 후보자가 등장했을 때 이임식까지 예정됐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휘둘린 박근혜정부에서 그도 자유롭지 못하다. 나가려던 ‘도로 총리’가 ‘대통령 예행연습’을 하면서 지지율이 오르자 대선 출마까지 한다면 대통령직을 희화화하는 일이다. 황 대행이 대선에 출마하면 나가려다 ‘도로 부총리’가 된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야 한다. 그는 국토교통부 장관을 하다 총선에 출마하겠다며 그만뒀다가 부총리가 됐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정치인 출신인 그마저 대통령 하겠다고 뛰쳐나간다면 유행어처럼 소는 누가 키우나.

대통령 선거가 벼락치기 시험이 돼선 안 된다. 정책 쇼핑해서 달달 외우고 분칠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를 하겠다면 추구해온 가치와 삶의 궤적이 일관성 있고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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